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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6. 2023

금의환향

     “아이고~ 찌네, 쪄. 장마 끝나믄 찜통더위라고 하드만...이거 찜통이라 아니라 용암 속이네, 용암 속이여.”     

  백반집 할머니는 백반집 옆 낙지요리 가게 앞에 놓인 작은 평상에 앉았어요. 2~3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평상이에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백반집 할머니와 낙지 요릿집 아주머니는 이곳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삶은 고구마며 옥수수 등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어째 오늘은 바람 한 점이 없네요. 습하기도 하고요. 더운데 매미는 점점 더 세차게 우는 것 같아요.”

    “매미사... 우는 것이 지 일인디뭐... 매미가 세차게 울어줘야 여름 아니것는가?”     


할머니는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게로 들어왔어요.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는 에어컨을 켰어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를 하는 신호랍니다. 할머니가 에어컨을 켜자 아직 평상에 앉아 있던 낙지 요릿집 사장님도 가게로 들어가 에어컨을 켜며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어요.      

  

     “매미가 울어야 여름다운 여름이제. 매미 소리 없으믄 허전하제. 

      저렇게 세차게 우는만큼 여름 햇님도 세차고, 지구도 세차게 끓어오르고...”     


노래를 하는 듯 할머니는 흥얼거리며 혼잣말을 했어요. 할머니의 노래는 구수한 옛 노랫가락 같기도 해요. 반찬 준비를 하던 할머니는 보기만 해도 익을 것 같은 바깥을 보고는      

  

      “오늘은 누가 올라나... 귀하디 귀한 사람이 올라나...”     


하며 중얼거렸어요. 곧 점심시간이 되기 시작하면 이 작은 가게는 바빠질 거예요. 비를 피하듯 뜨거운 햇볕을 피해 달려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멋쟁이 양산을 쓰고 엉덩이를 이쪽저쪽 흔들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햇볕을 다 받고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할머니는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이를 작게 채 썰고 있었어요.     

   TV에서 드라마 소리가 들리고, 주방에서는 여전히 할머니의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들렸어요. 작은 현관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예~ 어서오시....”     


인사를 하려고 문쪽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아이고~~ 이거시 누구랑가? 문태 아니여? 여기는 어짠 일이여?”     


하며 할머니는 손에 묻은 물을 앞치마에 쓱쓱 닦으며 문쪽으로 걸음을 재촉해 나갔어요. 반가운 손님, 귀한 손님이라고 맞이하듯 말이에요.     

   

      “네. 할머니, 저 기억하고 계셨어요? 저 문태예요.  잘 지내셨지요?”


하얀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 문태는 이제 주방을 벗어난 할머니에게 먼저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했어요. 할머니는 문태의 손을 양손으로 덮듯 잡고는 문태의 얼굴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아이고, 우리 문태가 이라고 멋진 사람이 되어서 왔는가. 금의환향했는가 어쨌는가?”

      “우리 할머니 여전히 성미 급하시네요. 저 할머니 밥 먹으러 왔어요.”

      “그려. 어서 앉어. 내가 맛난 밥 해줄게. 어째 아침부터 매미가 맴맴맴맴 세차게도 운다 했어.”

      “왜요~ 제가 세차게 우는 매미처럼 그랬어요?”

      “암만... 이 늙은이 가슴 떨어지게 세찼제.”     


할머니는 문태를 잡던 손을 놓고는 바쁘게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어요. 귀한 손님 대접할 마음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고 설레기까지 했거든요. 할머니의 콧노래가 다시 저절로 나왔어요.      

    문태는 익숙하듯 계단을 훌쩍 넘어 위층에 있는 안쪽 테이블에 가서 앉았어요. 그리고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서 읽었어요. 책을 읽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가게 안을 쭉 둘러보았지요. 벽에 붙어 있는 선풍기가 켜져 있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일어서서 선풍기 아래로 내려와 있는 끈을 ‘딸깍’하고는 한번 잡아당겼어요. 처음에 덜덜덜 하는 큰 움직임을 내며 선풍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내 선풍기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지요.     

   반찬이 담긴 둥그런 쟁반을 들고 할머니가 뒤뚱뒤뚱 걸으며 문태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오고 있었어요. 문태는 그 모습을 보고는 얼른 일어나 할머니 손에서 쟁반을 낚아채듯 받았어요.      

 

      “할머니~. 저 시키시지요. 이리 주세요. 지난번보다 더 다리가 안 좋으신가 봐요.”

      “나이가 몇 갠가? 앞으로 더 안 좋아질 일만 남았제.”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봄날의 해님처럼 방긋방긋 웃어 보였어요. 할머니는 이리 문태가 건강한 청년으로 돌아와 준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할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어제 사놓은 닭으로 닭볶음탕을 만들었어요. 감자도 듬뿍 넣어서 말이지요.     


       “할머니~ 냄새가 너무 좋아요. 너무 그리웠어요.”

      “뭐가 그리워? 그리우면 한 번도 오제 그랬는가? 얼매나 기다렸다고.”     


투정하듯 할머니는 말을 하지만 요리를 하는 손에 이미 ‘사랑 가득’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 같았어요. 곧 할머니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닭볶음탕을 가져와 문태가 앉은 테이블 위에 놓았어요. 그리고 문태 앞에 앉았지요.     

   

      “어뜨케 살았는가?”

      “할머니, 저 대학에 합격해서 대학 다니고 있었어요. 할머니 아실까 몰라...

        저기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인데....”

       “아이고~~ 대학생이 되었구먼. 잘혔네, 잘혔어.”

       “그리고 저 낼모레 군대 가요, 할머니.”

       “워메~ 인제사 군대를 가? 하하하. 잘하네, 잘해. 암만 그래야제. 와따 이제야 내가 발 뻗고 자겄구만. 우리 문태가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으믄 잠이 잘 오제. 암만.”

       “할머니도 참....”     


닭볶음탕을 우걱우걱 먹는 문태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그도 그럴 것이 4년 전 문태는 이렇게 밝은 청년이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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