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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Mar 08. 2022

홀딱 반해버린 고즈넉한 아름다움

혼자라 좋은, 시골 인문학여행 - 담양편 3

유희춘의 일기에 등장하는 놀라운 인물들 (brunch.co.kr)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조선시대 부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려 준 16세기의 기록 『미암일기』를 이제는 찾아 나설 차례입니다. 『미암일기』가 보관되어 있는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마을로 향합니다. 담양은 가사 문학의 산실이자 정자와 원림(園林)의 고장이지요. 명옥헌, 소쇄원,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독수정 등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정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미암일기』의 장산마을은 외부인들에게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고 고즈넉한 고장입니다. 마을의 북쪽, 그리고 좌우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그 자락에 기대어 500년 족히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아늑하게 자리 잡은 장산마을은 마을로 들어서는 이방인조차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연한 초록 이파리가 고목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동백, 홍매화, 수선화가 꽃 잔치를 시작하는 봄날의 장산마을은 시간을 초월한 듯 한가롭기만 합니다.                                                                      

담양 장산마을의 미암박물관으로 향합니다.
미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암일기>의 일부분입니다(필사본 11 책, 보물)
<미암일기>와 함께 보물로 지정된 <미암선생집>이 전시되어 있군요. (목판 총 396판, 1869)


벽에 걸려있는 초헌(2품 이상 고위 관료가 타던 수레) 틀은 미암이 타던 것으로 임진왜란 이전의 유물로는 매우 희귀한 것이라 합니다.


유희춘의 선산 유 씨 후손들이 대대로 소중히 보존해온 『미암일기』는 보물로 지정되어 지금은 이 장산마을의 미암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015년 미암박물관이 개관되기 전에는 의암서원, 유희춘 종가 등에서 차례로 관리해오다가 6·25 전쟁 직후에 모현관(慕賢館)이라는 건물에 보관됩니다. 2019년에서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모현관은 1957년 유물의 보호를 위해 유희춘의 후손들과 각계각층 지인들이 직접 나서 유적보존회를 만들고 건립한 건물입니다. 당시의 전남도지사, 광주시장, 광주고등법원장, 전남대 총장, 서울대 총장, 광주시의회 의장, 목포 시장 등이 『미암일기』의 가치를 알아보고 유적보존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연못 위에 비치는 아름다운 모현관과 뒤편 미암의 종가가 그림처럼 어우러집니다.

      

호남 서화계의 거봉인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의 글씨를 음각한 ‘모현관’ 편액이 인상적입니다.


지금의 장산마을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는 이 모현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벽에 푸른 화강암을 둘렀는데 화순에서 소달구지로 실어와 당시에 광주에서 제일가는 석공들이 다듬었다 전해집니다.  모현관은 큰 연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올려 만든 작은 섬 위에 지어졌습니다. 서양 건축 양식을 빌려 지은 석조 건물이면서도 전통적인 기와지붕의 형태를 접목한 건물로 광복 이후 우리나라 건축사에서도 그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화재를 피하기 위해서 종이로 된 유물 『미암일기』와 목판 『미암선생집』의 수장고를 물 위에 지었다는 점입니다. 종이와 나무에 치명적인 습기 때문에 결국 모현관은 수장고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이제 다른 용도를 위해 잠시 비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물 위에 수장고를 지은 당시의 선택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유산에도 가혹했던 6·25 전쟁을 겪은 직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유물에 가장 큰 위협은 무엇보다 화마(火魔)였을 테니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유물을 지켜내겠다는 당시 사람들의 의지가 소중하게 다가올 뿐입니다. 모현관을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며 의문이 태산만큼 쌓여갈 때쯤 퇴근길의 미암박물관 관장님이 잠가뒀던 내부까지 열어 보여주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오~ 나이스 한 관장님!^^  

     

종가 깊숙한 곳에는 광해군 때 세워진 미암의 사당이 단출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반깁니다. (전라남도 민속 문화재)


모현관 뒤편으로 여러 번 수리를 거쳤을 유희춘의 종가와 사당이 여전히 건재하고, 모현관의 왼편 나지막한 언덕 위에는 연계정(連繫亭)이라 적힌 아담한 정자가 마을을 굽어봅니다. 조선 후기 사람, 완산 이광수(完山 李光秀)가 쓴 『근서(謹書)』는, 유희춘이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공간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문인들 90여 명이 힘을 모아 중건하면서 정자 앞의 계류 이름을 따 연계정이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로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릅니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잘 어우러진 마을의 풍광에 마치 숨은 보물을 발견한 듯 즐겁습니다. 알콩달콩 꽁알꽁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이 살아간 미암과 덕봉 부부가 어디선가 얼굴을 내밀며 좀 쉬어가라고 손짓할 것만 같은 장산마을의 매력에 홀딱 반해버린 봄날입니다.         

     

연계정에 오르면 연못과 마을숲, 마을을 둘러싼 뒷산까지 한눈에 들어오지요.


아! 담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전국 어디에도 없는 갈빗대에 다진 갈빗살을 붙여 만든 담양식 떡갈비입니다! 담양에 올 때마다 찾아가는 <신식당>에 들러 뜨거운 냄비 위에서 여전히 지글지글 익혀지는 떡갈비 한 접시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웁니다. 이 특별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디저트도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이니만큼 대나무통을 활용한 아이디어 넘치는 대나무 티라미수로 눈도 입도 즐거운 오감만족 담양 여행을 슬슬 마무리합니다.  

          

참숯에 막 구워 나온 맛깔스러운 떡갈비입니다! 후르릅~~~^^
아.. 단숨에 먹기엔 넘나 아까운 귀여운 비주얼의 대나무 티라미수이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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