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복과 감사는 그 후에 찾아온다.
- 눈사람 만드는 거 재밌었어?
- 응, 좋았지. 체력만 받쳐 주면 한참 놀텐데, 춥기도 하고 괜히 다쳐서 고생할까 봐 조금만 놀고 들어왔어.
- 좋겠다. 눈사람 만드는 거 재밌어서.
- 눈사람 만드는 거, 그렇게 싫었어? 그래서 먼저 급하게 간 거야?
- 응, 난 재미없어. 집에 가서 눕고 싶지. 그런 게 아직도 재밌다니 솔직히 부럽다.
- 난 정말 재밌거든. 눈사람 만드는 거, 그 자체로도 좋은데 애들이랑 하니까 더 재밌지.
우리 아이들 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귀엽고 예쁘니.
작은 손으로 눈 굴리고 눈사람 만들고. 옆에서 보기만 해도 좋은데 같이 하니까 더 재밌지.
행복한 추억 하나 또 생겼네.
내가 기억력이 나쁜 게 이럴 때 좋아. 뭐든 흥미롭나봐. 별 기억이 없으니까 다 새롭고 궁금해져.
예전에 눈사람 만드는 게 힘들고 땀나고 재미없다는 기억이 있었다면, 아마 귀찮고 나가기 싫었겠지.
그런데 나는 '눈'하면 생각나는 건 행복한 추억들뿐이고, 그러니 '눈'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날아갈 듯이 신나.
눈 오는 날 출근하면 주위 동료들은 다들 '눈'에 불만이야. 눈이 많이 와서 힘들었다거나, 질퍽거려서 옷을 다 젖었다거나, 차가 많아서 출근 시간이 한참 걸렸다거나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아.
나라고 왜 녹은 눈에 안 젖고, 출근시간이 배로 걸리지 않았겠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게 나의 행복한 추억인 것 같아.
그리고 방금도 그런 추억을 하나 더 쌓은 거고.
아마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인스타나 릴스 보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때웠을 거야.
30대까지만 해도 나는 어느 정도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서 생각을 고쳐 먹었어.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나 재난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혹은 사업에 망하거나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삶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자!
그래서 비싸고 작은 강남 아파트 대신 훨씬 더 싸지만 강북의 넓은 집으로 이사했어.
넓은 주방에서 내 가족이 먹을 밥을 여유롭게 짓고 싶었고,
우아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싶었고,
나만의 공간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고,
햇살을 한껏 받으면서 아침마다 눈을 쓰고 싶었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게 나의 '일상의 행복'이야.
실은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그 의미가 '돈'과 '남의 시선'으로 왜곡되었어.
일상의 행복을 느끼면서 살기 위한 가장 큰 노력은 '욕심'을 버리는 것 같아.
부자가 되려는 욕심, 권력을 얻으려는 욕심, 대단한 지위에 대한 욕심, 그런 것들.
삶의 방향은 누구나 다를 테지만 나는 그 '욕심'을 줄여 보려고 애쓰고 있어.
인생을 힘들고 외롭고 순간순간을 힘들게 버티면서 사느냐,
흥미롭고 설레기도 하면서 짜릿하게 사느냐는
그 '욕심'에 달린 것 같아서.
식구들 밥하고 집안일하느라 주말 내내 분주했고,
내일 아침 쌓인 눈에 출근길이 구만리겠지만,
실은 그런 건 전혀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내가 지은 밥을 맛있다며 한 그릇씩 뚝딱 비워준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
눈을 던지며 그저 좋다고 하하하하 즐거워하던 아이의 웃음소리,
오늘은 나에게 그런 기억들만 저장되었거든.
내 일상은 그렇게 채워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