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차이

영원한 꼬리표, 출신학교

by 코끼리 날개달기

대학교 졸업 후 더 좋은 학교 졸업장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교는 지방대를 다녔더라도 대학원은 서울대일 수 있다. 이럴 때 출신학교를 묻는다면,


- 학교 어디 나왔어?

- 서울대.


이런 게 가능하다. 대학들이 재정 문제 등을 이유로 전문대학원 등을 만들어 학비만 내면 거의 문지방 넘는 수준의 입학자격을 내걸고 많은 사람들의 학력란에 좋은 대학 이름을 주었다. 한국이건 선진국이건 사회생활에서 어느 학교 출신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서울대 출신이 돼지국밥집 차린다고 하면 뉴스가 되니까.



회사에 입사하고서 대학 동문회를 처음 간 날 식사 겸 술자리를 가졌다.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끌어주겠다느니, 저기 앉은 누구에게 잘 보여야 성공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너무 불쾌했다. 그 이후로 동문회비는 내지만,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호텔에서 동문회 행사를 한다 해도 참석하지 않았다. 7년 후 승진 인사차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내민 동문회 자리도 변한 건 없었다. 얼마 지나서 회사에서 동문회 모임이 파벌을 만든다며 지양하도록 권고했다. 그래도 여전히 동문끼리 승진을 축하하고, 명절에는 안부 인사를 하며, 연말에는 송년회를 한다. 어떤 끈끈한 연대를 가진 모임 안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안정감을 준다. 안정감은 기분 좋고 감사하다. 하지만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득을 보는 상황은 손해를 보는 상황만큼이나 불편하다.



- 너 00이 고대 나온 거 알았어?

- 응. 그게 왜?

- 아니, 별 거 아닌 척하더니 고대라길래.

- 여기서 고대면 별 거 아니지 뭐.


주재원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에는 학사 출신은 명함도 못 내민다. 석사, 박사 학위가 흔하고, 서울대 혹은 서울대보다 더 좋은 외국 명문대 출신 엄마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일하는 엄마이기에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주재원의 아내로서 전업주부의 세상에 들어와 새로운 세상을 본다. 회사원이기에 출신학교가 꼬리표가 되는 줄 알았는데, 전업주부들의 사회생활에서도 출신학교는 아주 중요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출신학교를 난데없이 묻진 않는다. 필리핀이기에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게 되고, 플레이 데이트를 하는 문화이기에 엄마들끼리 대화할 시간이 길어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 탄수화물 다시 먹는 거야?

- 무슨 소리야, 사과는 무기질인데.

- 하하하. 그렇게라도 먹고 싶은 거야?

- 너 어디 아프니? 사과 무기질이잖아!


이런 대화가 몇 번 반복되면 사과를 무기질이라 당당히 주장한 엄마를 보는 주변 엄마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푼수 혹은 4차원이라고 표현하면서 은근히 그녀를 따돌린다. 그녀의 앞에서는 친근하게 대하지만, 뒤돌아서는 고개를 저어버린다. 이런 건 여고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었는데, 전업주부의 세상도 여고의 형태와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일 때는 친구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리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출신학교를 곧 지적 수준으로 보고, 그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잘 끼워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여고시절, 그런 무리에 끼지 않으려고 스스로 왕따가 되었던 아웃사이더들이 진정 품격 있는 친구들이었다.



지적 수준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인성 수준도 그다지 질이 좋다고 볼 수 없으니 결국 모두의 수준은 비슷하다. 하버드를 나오든 한국의 지방대를 나오든 같은 크기의 콘도에서 같은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며 살고 있다. 한국 주재원들이 왜 이렇게 모여 살게 되었나 했더니 신이 공평함을 알리려는 의도였나 보다. 너 자신의 수준을 좀 돌아보라고. 나 자신을 돌아본다.



섣불리 누가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래도 예일대를 나와서 자신의 가정부를 짐승 취급하는 사람보다는,

지방대를 나와도 최소한 자기 살림 맡아주는 가정부를 고맙다 여기는 사람이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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