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 그래, 승진이 뭐가 중요하겠어. 애들이랑 저녁도 먹고 이런 시간이 참 좋다.
드디어 일 중독이었던 남편이 내 의견을 조금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권력’이란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남편의 얼굴에 걱정이 어렸다. 동기들이 먼저 승진하기 시작하면 또 한 번 내 위치를 들여다보게 된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니 최고 권력을 잡기 위한 열띤 경쟁이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딱히 업적이라 할 것도 눈에 띄지 않고 대통령직에 대한 간절함도 없어 보인다. 순박한 얼굴에서는 대단한 열정을 읽을 수가 없다.
때론 분노를 표출하라.
직장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만든 조직인 캐털리스트가 최고 경영진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기주장이 강하고 야망을 숨기지 않는 여성은 거칠고 여성답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래도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중략) “너무 겸손해하지 말라. 그대가 그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전 이스라엘 수상 골다 메이어의 말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기술’ 중에서
당대표도 맡았고 벌써 네 번째 대선후보가 된 사람치고는 아직도 겸손하고 소극적인 태도다. 또 다른 대선을 앞두고 전보다 퇴보한 지지율을 보고 있자니 지지자로서도 무기력한 기분이다. ‘심블리’라는 별칭부터 권력과는 멀어도 너무 멀다. 권력을 잡고 싶긴 한 걸까.
나도 한때는 권력에 삐딱한 시선을 가졌었다. 조직에서 고속 승진하는 직원들은 조직의 권력자들에게 아첨을 잘했다. 업적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정치적 능력이 중요해 보였다.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치적 능력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내 고정관념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싸우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보면서 권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생긴 것.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단 이너써클(조직의 핵심층)에 들어가야 한다. 후보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겨야 정의를 지키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다른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에서 혼자 고고한 척하다가 지고 나면 그 수많은 공약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입사하고서 우리 조직에 대한 이야기는 70년대생 선배들에게 배웠다. 80년대생인 나는 이제 꼰대라 불린다. 이 조직에 적응한 90년대생들은 더 이상 이곳에 미래가 없다고 한다. 나조차 회사의 부속품 같은 생각이 들 때면 회의감이 밀려오는데, 신입직원들은 오죽할까. ‘가 족같은 문화’라는 말이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조직의 이너써클은 상명하복의 구시대적 문화를 버리고 정말 좋은 조직이란 무엇인지 공부를 해야 할 때다. 그리고 조직의 일원들은 이너써클에 들어가기 위해 업적과 정치 능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른 일을 하려면 가장 먼저 내가 이너써클에 들어가야 한다.
회사 복직 전 심란한 마음을 달랠 겸 얼마 전 블라인드의 글들을 읽어보는데 아주 신박한 댓글이 있었다.
- 행우님들, 00은행 탈출은 지능순.
똑똑하네,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 뻔했다. 그럼 난 좀 많이 모자란 축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물론 명석한 동기들이 일찌감치 관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거 모르는 바 아니었다. 반대로 매우 박식한 동기들도 꽤 좋은 직장을 두고 이직해서 은행으로 오기도 했다. 전자는 이해가 가지만 후자의 선택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같은 은행, 같은 조직인데 무엇이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일까.
권력으로 가는 길을 닦는 첫걸음은 적성과 관심에 맞는 환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즉, 일의 성격상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을 택해야 한다.
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기술’ 중에서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권력을 탐해야 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방법이다. 세상이 애당초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업적만으로 조직에서 내가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이미 인정한 사람들만이 조직을 떠나기도, 찾아오기도 한다. 놀랄만한 이력을 가진 동료가 내 옆에 있다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물을 게 아니다. 당연히 권력을 좇아 왔을 테니까. 이미 그런 동료가 내 곁에 있다면, 나는 이너써클로 가는 길을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힘없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반대로 권력과 그에 따르는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면 수명도 늘어난다.
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기술’ 중에서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간 몸까지 아플 것 같으니 이것은 좀 비약일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논리에 강한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 조직에 근속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조직에서 만났던 가장 존경하는 선배의 추천이다. 스탠퍼드 교수인 유명한 저자 때문이 아니라, 한 회사에 젊음을 바치고 퇴직한 보통의 직장인이 공감한 책이라 믿고 가는 중이다.
건강하게 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