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증후군 없는 마지막 명절

서로 이해한다면

by 코끼리 날개달기

팬데믹이라 또 좋은 점!

명절증후군이 없다는 것!

명절뿐 아니라, 제사에도, 집안 대소사에도 시댁에 가지 않는다. 갈 수 없으니까.



남편의 주재원 첫 해에만 해도 시할머니 제사에 맞춰 휴가를 내 한국을 갔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터지면서 출입국이 제한되고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하하.



오늘은 설날인데 혼자 일어나 떡국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필리핀이 아니라면 이미 어제 아침부터 시댁을 찾아 차례상 준비와 친척들 먹을 음식을 준비했을 거다. 설날 아침 세배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제사상 음식을 준비한다. 설날에 돌아가신 조상님이 계시다.



지금 이 기쁜 마음을 누군가에게라도 자랑하며 만끽하고 싶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설날이라고 해서 시댁에 가지 않는다. 여행 가서 즐거운 연휴를 즐기고 있겠지. 시댁을 찾아가는 친구들도 대부분 간단히 세배하고 식사하는 분위기라서 내 행복을 나눌 수가 없다. 시댁에 안 가서 좋다고 해봐야, 지금까지 왜 갔었냐는 핀잔만 들을 테니까.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언니들 중에 물색해봐야지.



- 언니! 필리핀에서 마지막 명절이에요!

- 아이고, 아쉽다! 뭐할 거야?

- 떡국 만들고 있어요.

- 한 달 전에 먹은 떡국 또 먹냐. 일단 오늘은 밥할 생각도 하지 마.



역시 며느리들의 한은 기승전 ‘밥’이다. 외부에서 온 여자라는 이유로 명절 내내 밥하고 설거지를 한다. 시가의 넓은 집에 고된 몸 한번 뉘일 공간조차 없다. 한국의 여자들이 그렇게 살았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이런 시댁의 문화가 처음에는 흥미로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정말 여자들만 음식을 하고 남자들은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니. 몇 년간 며느리로 지내고 나니 ‘82년생 김지영’이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낼 때 나도 눈물이 났다. 요즘 나온 ‘며느라기’를 보면서는 함께 웃기도 했다. 이제는 명절포비아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포비아까지는 아니지 않나, 요즘 사람들 참. 나 때는 말이지…….



우리 엄마들 세대는 모여서 30대 며느리 흉을 본다고 한다. 괜히 딸에게 며느리 험담을 했다간 혼쭐이 날 테니 같은 아들 엄마끼리 모인다. 내 귀한 아들하고 살면서 고마운 줄도 모르는 며느리 같으니라고. ‘82년생 김지영’을 함께 본 시어머니들은 아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감상평을 남겼다고 한다. 미혼여성들은 우울해서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기혼인 내 친구들은 한결같은 평을 내놨다.



- 정유미 이상해. 공유 같은 남편 있으면 고마워하고 살아야 하는 거 아냐? 공유 너무 비현실적이야! 꺄!



오해 금물! 절대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이해심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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