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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Feb 13. 2024

새끼손가락 걸고 한 약속

미소 짓게 하는 일


어제는 남편과 둘이 운동을 했다. 우리의 시선이 달라서 서로가 보고 있는 장면을 말해주면서 걸었다. 나는 주로 아래보다는 위를 살피는 편이라는 걸 남편에게 이야기해 주다가 알아차렸다. 예를 들면 나무 위, 하늘,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여보. 나무 위에 둥지 많은 것 좀 봐. 저 둥지에 소중한 게 있겠지?”

그러다 이번에는 남편이 ‘저기 저 오리들 줄지어 가는 것 좀 보라며’ 말하기에 눈을 내렸다. 마치 거처를 옮기는 가족의 모습처럼 네 마리의 오리들이 띄엄띄엄 줄지어 이동을 하고 있었다.



하천에는 사람이 많았다. 명절 다음날이지만 휴일이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얼마 없겠거니 했으나 많은 인원수에 잠깐 놀라며 기존 생각을 거두었다. 각자 사정에 맞게 명절을 보내고 같은 시각 같은 다짐으로 하천에 나와 나랑 스치며 운동하는 사람들. 나는 이번 명절 인생 처음이자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 식구와 1박 2일 근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며 추억을 선사하지만 여행 끝은 사실 고되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여행여행 노래를 부르다가도 여행을 마치면 다시 내 침대 내 이불이 그리운 집타령을 하게 된다. 아마 이날 운동하던 많은 이들도 나처럼 얼른 일상으로 복귀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하려고 다들 운동에 나온 건 아니었을까.


한편 일반 주말과 달리 명절 휴일에 운동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명절답게 가족 형태가 많았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눈에 자주 보였다. 한 바퀴를 돌고 돌아가는 참에 남편이 말했다.

“나는 우리 소복이가 좀 크면 내 팔짱 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러려면 딸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모호한 식으로 말을 했다.

“알지. 근데 내가 그런 생각을 왜 문득 했냐면 저기도 여기도 다 봐봐. 딸들이 엄마 팔짱만 껴. 아빠들은 뒤에 멀찍이 따라가기만 하고. 아빠한테 팔짱 낀 딸이 안 보여.”


주변을 보니 남편의 말대로 그런 가정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현실적인 가족이지 싶어서 킥킥 웃었다. 곧장 아빠와 내적 친밀감없이 자란 내 모습도 떠올라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보. 나도 아빠 팔짱 껴본 적 없어. 딱 저기 저 가족 모습이랑 비슷하다.”


나는 남편의 바람에 내가 상상하는 그림을 추가한 바람을 이어서 말했다. 암과 동행하며 생기는 고난 속에서 지녀야 할 나의 굳건한 의지가 담긴 말이기도 했다.

“여보. 걱정 마. 나랑 소복이가 여보 팔 한쪽씩에 팔짱 꽉 끼고 걸을게.”


한창 조잘조잘 말을 예쁘게 하는 29개월의 소복이를 보면 과연 사춘기가 와서 우리 부부 속을 썩이려나 싶고, 아빠에게 달려가 폭 안기는 애교를 부릴 때면 팔짱은 당연히 낄 것 같은데 어느 가정처럼 아빠 팔짱은 끼지 않으려나 싶다. 그러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이동하던 가족의 모습을 한 오리들처럼만 그저 그렇게만 우리 가족도 이동하는 걷기라도 함께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러다 기적처럼 그날 하루 우리 부부가 함께 상상하며 그린 미래. 우리 셋이 함께 팔짱 끼자고 한 약속을 한 날을 주시지 않을까. 미래를 생각해 현재를 빼앗기는 속상한 경우도 있지만 때로 삶의 이유는 새끼손가락 걸며 한 약속을 보기 위한 것에도 있다. 웃음 짓게 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 상상만으로도 웃음 짓게 하는 미래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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