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는 이유
학교(學校)라는 말은 언뜻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 '배운다'는 말의 의미는 광범위하다.
아이들은 학교에 친구를 만나러 온다.
누구보다도 방학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이들일 것 같지만, 사실 방학이 끝난 후 소감을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방학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한 달이 영원할 것만 같고 매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오전에 하릴없이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방학 특강으로 잡혀있는 학원을 몇 군데 돌고, 평소에 매일 만나던 친구들을 따로 연락해서야 겨우 몇 명 만날 수 있으니 서로가 그리웠을 것이다. 늦잠 자는 것도 한두 번이고 게임이나 핸드폰에 빠져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면 지겹다.
1학년을 처음 맡았던 해의 일이다. 아직 3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귀여운 아이들이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말을 걸어보았다.
“너네는 유치원 때 친구들이니?”
“아니오. 저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친구였어요.”
“오잉? 엄청 오래된 친구들이구나.”
몇 주 후 상담 시간에 아이의 어머니들께 여쭈어보니, 사실 두 아이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엄마들의 육아휴직 기간에 같은 문화센터를 다닌 사이였다. 오랫동안 쭉 만난 건 아니고, 엄마들의 복직과 함께 서로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는데 우연히 같은 반에 입학하게 되어서 ‘너네는 아기 때 친구였어’라고 말해준 것이 그 둘의 마음에 우정을 싹틔워준 것이다. 1학년 때에는 같은 유치원 출신이어도 엄마끼리 아는 사이가 아니면 데면데면하고, 가족들끼리 만남을 갖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면 출신 유치원과 상관없이 또 학교에서 같은 반이 아니어도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우정을 나누게 된다. 워킹맘들이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서 친구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5학년 담임을 하던 어느 날인가 상담을 하다가 성별이 다른 현준이와 지수(가명)가 사실 가족끼리 굉장히 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나 꾸준히 모임을 하고 있고, 아빠들도 함께 만나 캠핑을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것이다. 전혀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짓자, "학교에서는 전혀 티 내지 않죠?"라고 하시며 어렸을 때는 교실에서도 둘이 친하게 지냈는데 점점 자라면서 사춘기가 왔는지 학교에서는 모르는 척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가족 모임에서는 여전히 사촌 남매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하니 그 후로 교실에서 둘 사이를 바라볼 때면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1학년 때의 우정이 어른들의 간섭 여부에 따라 꽤 많이 결정된다면, 6학년 아이들은 우정은 그 반대이다. 부모가 개입하려고 해도 내 아이와 친구가 싸운 것을 억지로 화해시키거나 다시 베스트 프렌드로 만들어줄 수 없다. 교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우리 반에는 학기 초부터 눈에 띌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여학생 4명이 있었다. 출석번호도 앞뒤로 붙어있고,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다. 키도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고, 숙제는 잘 안 해오지만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닮아 있는 친구들이었다. 선생님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 헤헤거리면서 잘못했다고도 하고, 수업 태도는 나쁘지 않았기에 두루두루 잘 지내라는 정도만 이야기해 주고 다소 염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서로에 대한 탐색기인 봄이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어느 더운 날 그 그룹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붙어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이 하나씩 생기고, 누군가 다른 반 친구들에게 은수(가명)의 험담을 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돌고 돌아 은수의 귀에 들어오게 되었고, 물증으로는 인스타 DM으로 주고받은 험담을 캡처한 이미지가 남았다. 6학년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교사에게 잘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때는 이미 4명의 그룹에서 한 명이 완전히 내쳐진 상태였다. 3명의 아이들은 ‘이제 은수랑 잘 풀고 싶다고 사과했는데 은수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면서 사과를 안 받아줘요.’ 라며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양쪽의 잘잘못 -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 을 가려주고 은수가 사과를 당장은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시간을 주라고 말해주었다. 선생님이 은수를 끌고 와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주라고 해서 너네 사이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서로 주고받은 상처가 있으니 적당한 때를 기다리자는 말도 덧붙였다.
그 후로 교실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애매모호해졌다. 은수와 나머지 3명은 서로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과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지냈지만, 중간에 껴 있는 다른 여학생들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리를 바꾸거나 조별로 뭔가를 시킬 때, 그 아이들끼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웬만하면 만나지 않도록 은근한 조율을 해야 했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남학생들은 은수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 그런 공기가 흐른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이 사태가 그렇게 오래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