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준비하는, 수업을 바라보는 자세
공개수업의 계획
학부모에게 공개되는 수업이라면 - 대부분의 경우 - 과목과 차시를 정할 때부터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활동을 고안하는 것까지 모든 초점은 ‘아이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자’에 맞춰져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기껏 시간을 내서 어렵게 수업을 참관하는데, 내 아이가 끄적끄적 쓰고 그리는 모습만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손을 들고일어나서, 앞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학습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업의 내용에 따라 조용히 강의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고, 모둠별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공개수업날은 둘 다 곤란하다.
10여분 조용히 수업 내용에 귀 기울이고, 10여분 각자 자기가 해야 할 과제를 완수하고, 남은 10여분은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방금 완성한 과제물을 발표하는 것이 공개수업에서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10분은 처음 수업 동기 유발과 마지막 수업 마무리에 절반씩 할애한다면 40분(초등)을 꽉 채울 수 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공개수업
평소처럼 수업한다면, 1학년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겠다고 아우성치다가 같은 대답을 여러 번 반복하기 일쑤이다. 다른 친구의 대답은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생님의 질문과 전혀 관계없는 답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40분 내내 손을 들지 않고 있다가 선생님이 발표를 권하면 거부하거나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게다가 뒤에 누가 왔는지 구경하느라고 수업 중간중간 뒤돌아보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많다. 수업안을 짤 때는 그러한 어수선함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1학년 특유의 엉뚱함과 소란스러움, 뒤에 계신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들고 질문에 맞지 않는 답을 하는 것조차 참관하는 사람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한다. 너무 조용하고, 얼음처럼 굳어있는 모습을 본다면 오히려 다들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혹시, 선생님이 너무 무서우신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6학년 아이들은 평소에도 발표를 잘하지 않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참관하고 있다면 더더욱 손을 들지 않는다. 선생님의 질문에 똘똘한 두세 명이 잽싸게 정답을 말하며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업이라면, 대답하지 않는 나머지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할 게 분명하다. 내 아이가 들러리나 서는 모습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닐 테니…
‘꿀 먹은 벙어리 수업’의 적막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올해 6학년 공개 수업의 말미에 아이들의 작품을 모두 걷어 와서 실물화상기 - 어떤 실물의 교재를 확대해서 화면에 띄워주는 고정형 카메라 - 에 보여주고, 해당 아이를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발표를 대신했다.
평소 발표를 곧잘 하던 아이들 조차 아무 말을 하지 않으려 해서 “발표해 볼 사람 손 들어볼까요? “라는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교실에는 어색한 적막만이 흘렀다.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조금 전에 걷어둔 여러분의 명함 (수업 내용이 미래의 내 명함 꾸미기였음)을 선생님이 모두에게 보여주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으로 발표를 대신하겠습니다. “
“으악!”
“하하하하”
발표할 용기는 없었는데 선생님이 대신해 준다니!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엄살 섞인 비명과, 참관하시는 부모님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명함을 화면에 크게 띄움으로써 주인공인 아이들도 쭈뼛쭈뼛 의자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마지막 아이가 쇼맨십을 발휘해 빙글빙글 두 바퀴를 돈 뒤 자리에 앉자, 때마침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플랜 B의 완벽한 성공이었다.
어느 학년이든, 공개 수업 당일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서 달라질 두세 가지 예비 안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 좋다.
공개수업의 참관
1학년 아이들은 공개수업 중 계속 뒤를 의식하며 누가 왔는지 궁금해한다.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 ‘우리 엄마’가 나타나지 않으면 눈물이 눈에 차오르기도 한다.
“야, 너네 엄마 왔다!”
“어디 어디?”
“어?! 엄마 왜 화장하고 왔어?”
동물원에서 인간이 동물을 보는 건지 동물이 인간을 보는 건지 아리송한 것처럼, 아이들이 부모를 관람하는 건지 부모들이 아이 수업을 참관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6학년 중에는 자신의 보호자가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을 더 바라는 경우도 꽤 있다.
“우리 엄마는 바빠서 못 온대!”
“그래? 우리 엄마는 귀찮아서 안 오는데”
“좋겠다!! 우리 집은 내가 오지 말랬는데 아빠까지 휴가 내고 온대. 망했어!”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공개수업을 앞둔 우리 반 6학년 아이들의 실제 대화이다.
엄마든 아빠든, 나의 보호자가 와서 내 수업을 지켜본다는 것이 마냥 설레고 들떴던 1학년.
해가 거듭될수록, 공개수업에 보호자가 왔다 가는 것이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6학년.
어쩌면 그 씁쓸한 깨달음의 이유는, 아이들에게서가 아니라 어른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왜 집중을 못하니?
너 아까 돌아보고 이야기하더라?
OO 이는 발표 잘하던데
너는 손 한 번을 안 드니?
이렇게 부정적인 피드백이 계속된다면 아이들은 점점 더 공개수업에 누군가 오는 것을 꺼려하게 될 것이다.
잘못한 점보다는 잘한 점을 찾아서 칭찬해 주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다면 중학생이 되어서도 학교 생활에 대해 숨김없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