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말 이성계 장군(2)
공민왕은 자신의 충신 두 사람 중에 하나를 이성계 장군을 꼽을 정도로, 이성계 장군은 한때 고려와 고려 왕실의 기둥이었다.
이성계 장군의 힘은 본인의 무공에도 있었지만, 본인이 데리고 있는 사병 집단과 그 통솔력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별초란 원래 사병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덧 가별초라는 이성계의 사병 집단이 대명사처럼 쓰여지게 된다. 별초라고 말하면, 바로 가별초를 뜻하게 된 것이다.
가별초의 숫자는 3000~4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숫자 대부분이 기마병이었던데다가 훈련도가 높았다. 그들은 왜의 침입 뿐만이 아니라, 약 10만이라는 홍건적의 대규모 침입 때에도 활약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라 국방력의 50%를 가별초가 담당하였다고 해도 과장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성계와 가별초는 그만큼 많은 전투에 투입되고, 전체 한반도 역사에 손꼽힐 만큼의 전공을 남긴다.
한때는 충신이었던 장군, 고려의 최후의 보루기도 했던 장군은 어떻게 하여 고려 왕실을 끝내고, 남은 고려 왕족들을 학살하는 사람이 됐을까?
고려의 마지막 기회였던 공민왕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고려의 국방력은 개인의 사병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권문세족들에 의한 구체제의 모순은 극에 달했다.
외교도 문제였다. 고려거란 전쟁을 승리하고도 실리를 택해 거란과 화친했던 고려, 대금과 남송 사이에서도 균형외교를 폈던 고려, 처절한 항쟁의 과정에서도 당시 집권이 불투명했던 쿠빌라이와 동맹을 통해 원나라 영향권의 나라 중에 거의 유일하게 제후국이 됐던 고려.
그리고 공민왕의 마지막 촛불은 어떻게 꺼지게 된 것일까?
이제 공민왕과 권문세족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