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하늘 아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골목에서 민재는 비닐봉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신중하게 플라스틱 용기에서 라벨을 떼어내고, 뚜껑을 따로 분리했다. 평소처럼 분리배출을 하던 그였지만, 문득 이 모든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며칠 전, 민재는 환경 전문가의 칼럼을 읽었다. 선진국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재활용률이 80%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열된 글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민재는 과거에 본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가 동남아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출하고, 수입국에서는 처리할 능력이 없어 그것들을 쌓아두거나 강가에 방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플라스틱은 그 나라의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키며, 돈을 주고 보내는 선진국은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민재는 한숨을 쉬며 분리배출된 플라스틱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 보호를 위해 쓰레기 분리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페트병 본체, 레이블, 뚜껑을 따로 버려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민재는 이제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철저하게 분리배출을 해도, 그것이 결국 동남아의 어떤 마을을 오염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라면, 이 모든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며칠 후, 민재는 인터넷을 통해 플라스틱 재활용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필리핀에서 반송된 한국의 쓰레기 이야기를 접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시민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노력은 기업과 정부가 설정한 무대 위의 연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동안, 기업들은 여전히 플라스틱을 무분별하게 생산하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이걸 만들고 파는 사람들이지."
민재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지만, 한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다 헛수고라면..."
그날 이후, 민재는 작은 행동을 시작했다. 플라스틱 포장이 많은 제품을 사지 않으려 노력했고, 가능하면 재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들고 다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SNS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올렸다.
"우리가 하는 분리배출이 정말 환경 보호로 이어질까요? 아니면 단순히 기업과 정부가 만든 시스템 속에서 죄책감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장치일 뿐일까요?"
댓글 창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누군가는 그의 생각에 공감했고, 누군가는 그저 분리배출을 잘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민재는 더 이상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뉴스에서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을 규제하고, 기업이 책임지는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민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가로등 아래에서 플라스틱을 분리했다. 이번엔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작은 움직임이라는 확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