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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습작 03화

[쇼츠]거부된 미래

by 기담


태양력 3124년, 인류는 이제 더 이상 국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가 아닌, 권한과 특권으로 구분되는 신정(新政)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개개인의 기본 권리는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보장되었지만, 핵심 권한을 행사하는 소수 엘리트들은 특권을 통해 지배했다. 지구 연방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름으로 권한을 집중시켰지만, 실상은 특권층의 배타적 지배 구조가 고착된 사회였다.

네온 불빛이 흐드러진 도시 위, 하나의 홀로그램 뉴스가 떠올랐다.

"연방 최고위원회, 이번에도 거부권 행사 없이 신법안을 승인!"

이 사회에서 특권은 신성불가침한 개념이었다. 특권층이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전략이었다. 대통령직을 포함한 고위 관료들은 실질적으로 법안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그 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특권을 영속적으로 보장받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이 이 체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라나라는 젊은 법학자는 이 역설적인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자 했다. 그녀는 연방헌법을 연구하며, 이 사회에서 특권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분석했다.

"우리는 자유를 보장받고 있지만, 실질적인 선택권은 제한되어 있어요.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허울뿐인 권리입니다. 만약 특권층이 이 원칙을 깨뜨린다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거예요. 하지만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그 원칙을 깨야 합니다."

라나는 소수의 반체제 학자들과 함께 연방정부가 단 한 번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압박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인간 권리에 대한 법안을 제출하며, 대통령이 이를 승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 법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모든 인간은 기계적 관리 시스템에서 독립할 권리를 가진다."

연방정부는 이 법안을 승인할 경우, 자신들의 특권 유지 시스템이 흔들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거부할 경우, 특권이 유지되는 전통적 원칙이 깨질 것이었다. 결국, 이는 정치적 관행을 시험하는 도전장이었다.

"최고위원회의 답변은?"

그 순간, 홀로그램 뉴스에 긴급 속보가 떴다.

"연방 최고위원회, 최초로 거부권 행사!"

라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체제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거부권을 사용한 순간, 연방정부의 특권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 행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었고, 특권층과 일반 시민 간의 균열을 가속화할 것이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었다. 과연 그 시대는 자유를 위한 시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 강력한 권위주의 사회로 이어질 것인가?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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