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협상가 지대리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면담을 신청한 날이다. 지대리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을 지지하는 수많은 직원들의 응원을 한몸에 느끼며 회의실로 들어간다. 지대리를 응원하는건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인스타 1만 팔로워를 보유한 지대리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항상 인스타에 올린다. 아주 예쁜편은 아니지만 털털하면서 항상 당차고 밝은 모습의 지대리는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언제나 인기쟁이다. 이들의 응원과 격려속에 지대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내겠다'는 생각으로 결전에 임하러 회의실로 들어간다.
회의실 안에는 심상무가 핸드폰을 하고 있다. 이 아저씨는 겉으로는 밝게 대하지만 속이 검은 샌님이다. 뼛속까지 사측인 이 못된 임원을 논리적으로 제압하여 당연히 얻어내야 할 것을 얻어내는 것이 오늘의 면담주제이다. 회사란 조직은 소문이 빠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두명 이상에게 비밀을 말했다면 일주일 내로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이 옳다. 특히 그 비밀이 연봉협상 같은 예민한 주제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번 연봉협상은 창사이래 최초로(적어도 지대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이기심에 기반한게 아닌 모두를 위한 공적인 협상이다. 어차피 심상무도 이를 눈치 챘을 것이다. 그래서 셋업따윈 없다. 이곳은 사각의 링이다. 글러브터치를 대신한 아침인사 한마디를 서로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직행한다.
"제가 면담을 신청한 이유는 잘 아실거라 믿어요."
교활한 심상무는 짐짓 모른체 이렇게 응수한다.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어떤 불편한 일이 있었니?"
"올해는 급여 인상이 되지 않았는데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상투적인 네가지 패턴 연계가 이어진다. 너무나 예상했던 답변 그대로이다. 첫번째 패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내가 지대리 열심히 하는건 누구보다 잘 알지..." 이어지는 두번째 패턴, "내가 무슨 힘이 있겠니 내 회사였으면 20%는 올려주고도 남았지...". 그리고 세번째 패턴, "나도 똑같이 안올랐단다. 참 사장님이 야속하기도 하지..." 마지막 패턴, "그래도 참고 열심히 하면 내년엔 꼭 오를거야 힘내!"
위 네 줄을 약 30분동안 혼자 설명한다. 심상무는 정말 시간의 마법사다. 이마저도 김과장이 알려준대로 중간에 말을 끊지말고 듣기만 해서 이정도 시간이 나왔다. 만약 평소처럼 말을 듣자마자 바로바로 반박을 했으면 두시간이 걸릴지 세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또 그런 난전에서 심상무는 정말 강하다. 내가 아무리 준비를 잘 해왔어도 말실수 몇번 하는 순간 게임오버다. 다행히 지대리는 코치의 게임플랜을 숙지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연신 신나게 이야기하던 심상무가 목이 마른지 물을 한잔 마신다. 적이 연신 페이스를 올리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체력을 소모시켰다. 전략이 좋다. 이제 반격할 시간이다. 지대리는 생각한다. '난 모든이를 대신해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