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둘째는 낳고나서 주변 많은 엄마들로부터 들었던 가장 무서웠던 이야기는 다름아닌 두 아이의 싸움이었다. 기어다니면서부터 싸움시작이라해서 쪼쪼는 다 늦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육아메이트들이 다롱이쪼쪼 보고 대근육자매라고 부를 만큼 다롱이에 이에 쪼쪼 또한 대근육 발달이 빨랐다. 그렇게 만들이 말하던 자매간 싸움 지옥이 빨리도 찾아오게 되었다.
많은 엄마들이 둘째를 낳는 이유 중 하나는 첫째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둘째 존재가 첫째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친구같은 존재로서 지내길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 외동인 사람의 부모님 장례소식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물론 둘이 늘 사이좋은 자매이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드라마와같은 판타지가 아닐까?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 할 정도로 뒤 돌아서면 싸워내는 아이들을 보니 둘이 전생에 웬수였나 싶은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3살이 된 쪼쪼는 어느정도 말로 언니한테 표현할 수 있어서 지금은 덜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유혈사태까지 일어났었고, 나의 육아가 문제인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자매라 언니와 참 자주 싸웠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절레절레 고개짓을 하게 된다. 언니의 결혼 전까지 싸웠으니 말이다. 결혼 후 사이가 좋아지긴 했지만 싸웠던 기억만은 여전히 좋게 미화되지는 않는다. 평생 웬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평생 친구의 시작이 좀 더 빨랐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습관처럼 둘이 싸우겠다 싶은 시그널만 보여도 하지마! 그만! 이라고 일관되게 외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매 싸움 중 아이들의 감정을 모두 읽어주고 보듬어주기란 쉽지 않았고 지쳐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작은 이유 하나로도 싸움이 시작되지만 그렇게 싸우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1%의 노력도 하지 않고 귀를 막고 하지말라고만 말하는 내 모습이 객관화되는 이성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서로 귀를 닫고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왜 그렇게 싸울까? 하며 너희에게서만 원인을 찾아내려 했는데,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을 보니까 엄마마저도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엄마가 먼저 너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할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매가 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