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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검은 22화

검은 옹이

by 혜윰


출근길, 바쁘게 걷던 발걸음이 문득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멈춰 섰다. 아침 햇살이 십여 층 아파트를 넘어서지 못한 채, 좁고 세로로 긴 정원이 어둠에 움츠리고 있었다. 그 속에 선 나무들은 검고 가느다란 몸을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곧게, 어떤 것은 비스듬히, 또 어떤 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몸통 군데군데 박힌 옹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을 향해 끝없이 뻗어낸 가지들이 죽거나 안으로 말려 들어가 생긴 흔적들. 어떤 옹이는 움푹 파였고, 어떤 것은 속살이 드러난 채 둥그스름하게 돋아 있었다. 살아내려는 몸부림이 피부 아래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그 흔적에 자신의 상처를 겹쳐 보았다. 가지가 꺾여나간 그녀의 마음 줄기 자리는, 마치 나무가 스스로의 살을 덧대어 옹이를 감싸듯 서서히 아물어갔다. 더는 다치고 싶지 않아 굳게 닫아버렸던 마음. 하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기 위해 다시 빛을 향해 가지를 뻗어야 했던 순간들. 옹이는 끝이 아니었다. 그건 생(生)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증명이었다. 그 흔적은 그녀가 통과한 시간을 고스란히 아로새긴 무늬였다.


그녀는 옹이를 품은 나무들을 마음에 갈무리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어떤 옹이가 더 새겨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상처를 안은 채로도 기어코 가지를 뻗어낸 나무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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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