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가지?

함께 또 따로 걷기

by 은섬


길 위에서 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일행이 있는 이들도 있고 나처럼 홀로 순례길에 오른 이들도 있다. 일행은 주로 가족이거나 친구, 동호회원들이고 홀로 왔다가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일정을 함께 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순례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럼없이 함께 하게 된다.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사실 언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표정과 몸짓, 아주 간단한 몇 개의 단어 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외래어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꽤나 많은 영역에서 자주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언어를 모른다고 순례길을 떠나거나 외국인을 마주하는 것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내가 이런 것까지 알고 있었다고? 깜짝 놀랄 순간이 온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언어로 말을 하는데도 소통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행과 따로 또 함께 걷기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하루에 대략 짧게는 5시간 길게는 8시간 정도 길을 걷는데, 산책처럼 짧은 거리를 잠깐 걷는 것이라일행들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을 맞추겠지만 오랜 시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장거리의 걷기라면 일행이 있다 하더라도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편이 낫다. 본인의 속도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걸을 경우 피로가 가중되고, 피로도가 높아지면 부상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몸 상태가 각기 다르고, 걷는 속도뿐만 아니라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고, 휴식이 필요한 포인트와 빈도, 쉬는 방법과 시간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하루 이틀 걷고 마는 길이 아니라 한 달 이상 장기간 걸어야 하는 길이므로, 모두가 작은 것에도 예민해지고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쉽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므로, 그날그날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무리 없이 걷는 것이 중요하다.

일행과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중간중간 식당, 바, 갈림길 표지석 등의 포인트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므로 서로 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어두울 때나, 인적이 드문 숲 속 길, 기상 상태가 나쁠 때에는 혼자가 위험할 수도 있으므로 따로 또 같이 걷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지인과 순례자

순례길을 걷다 보면 현지인들이 생활하며 사는 마을을 계속 통과하게 된다. 그들의 일상 속에 좋든 싫든 순례자들이 끼어들게 되는 것이므로 예절과 배려가 필요하다. 현지인들은 길을 잃거나 여러 가지 위급한 상황에 빠진 순례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을 평편하게 고르고, 물 웅덩이를 건널 돌을 놓고, 폭설에 길을 내주거나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치우고, 노란 화살표를 잘 보이도록 정비하며 오도 가도 못한 상황일 때 도와줄 것이다. 이 모든 호의는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우리가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이런 호의를 베푼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올라! 또는 차오! 한마디면 된다. 웃으며 화답해 줄 것이다. 지천에 널린 농작물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것,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며 소란하지 않게 조용히 마을을 지나는 것이 순례자가 지킬 수 있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예절일 것이다. 간혹 농장을 지날 때 농부가 갓 수확한 농작물(포도, 체리, 오렌지 등)을 건넨다면 가격을 물어보고 값을 치르자. 결코 비싸지 않을 것이다. 판매 목적이 아닌 농부의 호의라면 부디 사양 말고 감사히 받자. 일부 식당이나 바에서도 순례자에게는 음식을 더 푸짐하게 주기도 하고, 작은 쿠키나 사탕, 초콜릿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우리가 기쁘게 받는다면 그들은 더욱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쁨은 우리 뒤에 올 다음 순례자들에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혼자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떠나기 전, 몹시도 지쳐있었고
모든 것이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개별의 그들은 거대한 무리.
모든 것은 빼앗긴 이의 탓이라
수탈의 손가락은 약자를 향한다.

누가 누구에게 역지사지를 말하는가?
빼앗길 바에 주라는 강요는
오만과 이기를 권리로 만든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는
선택과 관계라는 탈을 쓰고
오늘도 개별을 찾아 사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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