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요점만 딱 이야기한다면 최적의 시기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과 가을인 3월~5월 그리고 9월~11월이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내가 떠나는 바로 그 시기가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봄과 가을, 누가 생각해도 좋을 때 긴 시간 떠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냥 떠날 수 있는 시기에 맞춰 준비를 하면 그만이다. 떠나는 시기보다 떠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3~5월 : 겨울에 문을 닫았던 대부분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오픈하며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으로 걷기에 좋다.
9~11월 : 무더운 여름이 지나는 9월부터 겨울철 알베르게가 문을 닫기 전으로 더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7월 순례자들이 붐비는 시기를 지나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날씨와 기온이 온화한 봄과 가을에도 고지대를 통과할 때에는 갑작스러운 눈, 우박, 비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6~8월 한여름에 순례를 할 경우, 그늘 없는 뜨거운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일사병, 열사병, 탈수를 조심하고 숙소에서는 베드버그(빈대)를 조심한다. 야고보 성인의 축일인 7월 25일을 목표로 많은 이들이 걸으므로, 알베르게가 포화상태이기 쉽다. 해가 길어 늦게까지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해 태양이 뜨거운 한낮에는 쉬었다 가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순례자가 많은 시기므로 예상치 못한 서로 간의 다툼이나 불미스러운 일을 경계해야 한다.
12월~2월 한겨울에는 추위와 눈, 비바람과 같은 날씨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알베르게나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문을 연 알베르게를 찾거나 다른 사설 숙소(펜시온, 호스텔, 호텔)에서 묵어야 할 경우도 있다. 문을 연 알베르게라 할지라도 난방 자체가 없거나, 난방을 하더라도 잠든 후에는 난방을 끄기 때문에 새벽에는 몹시 춥다. 두꺼운 옷가지와 침낭,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배낭이 더 크고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겨울은 우기로 비가 자주 내리는데 하루 종일 내릴 뿐만 아니라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강한 바람, 우박과 함께 내리므로 일회용 우비는 버티지 못한다. 튼튼하고 기능성 좋은 우비를 준비하고, 고지대로 갈수록 비가 눈으로 변하므로 고지대를 통과할 때에는 혼자 걷는 것보다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해가 짧기 때문에 너무 이른 시각에 순례를 시작하게 되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고, 일찍 해가 져서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여름보다 짧다. 그만큼 이동 거리가 짧아지므로 전체적인 순례일정을 여유롭게 계획한다. 타이트한 일정에 쫓겨 서두르거나 어둠 속에 길을 걸을 경우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산티아고 길은 안전한 길이지만, 사고나 불행은 늘 예고하지 않는 것들이기에 느닷없는 위험에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여러 어려움 속에도 겨울은,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적은 수의 순례자가 서로 도우며 걷는다는 장점이 있다.
<< 참고 사항 >>
1. 야고보 성년(희년) : 야고보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인 해는 성년(희년)으로 선포되어 한 해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전대사가 주어진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은총으로 많은 이들이 성년에 맞춰 이 길을 걷는다. (성년이 아닌 해에는 전대사가 아닌 죄의 절반이 감해진다고 함) 아래의 통계 자료를 보면 2010년 성년 순례자는 272,135명으로 2009년 145,877명의 두 배에 달한다.
2009년 145,877명 (연령별 순례자 통계)
2010년 272,135명 (연령별 순례자 통계)
최근의 성년은 2021년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순례자가 줄어 178,912명에 그쳤지만, 팬데믹 직전 2019년 순례자는 무려 347,578명이다. 향후 50년 동안 성년은 일곱 번에 불과한데 2027년, 2032년, 2038년, 2049년, 2055년, 2060년, 2066년이다.
2. 겨울 피레네 산맥
생장에서 프랑스 길을 시작한다면 스페인으로 국경을 건널 때 피레네 산맥을 넘게 된다. 바로 순례 첫날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례자들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서 황홀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폭설과 안전 문제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이 루트는 폐쇄된다. 일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반짝 온화한기상을 믿고 이 길에 들어섰다가 조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호기로운 자신감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걷는 일행들과 구조대원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므로 겨울에 피레네를 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 겨울이 아니더라도 폭풍우 같은 기상악화로 피레네를 넘는 나폴레옹 루트가 폐쇄될 수 있고, 이런 경우 발카를로스 루트로 국경을 넘는다.
3. 여름 베드버그
베드버그는 주로 침구류에 서식하며 밤에 자는 동안 출현해 흡혈을 한다. 물린 곳은 참을 수 없이 가렵고 심하면 수포나 염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어려서부터 베드버그에 노출 빈도가 높은 유럽인들은 모기 물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지만 베드버그에 내성이 없는 우리는 약국에 가서 물린 곳을 보여주고 약을 처방받거나 정도가 심하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베드버그는 옷이나 배낭과 같은 개인 짐 속에 숨어서 사람과 함께 이동하므로 베드버그에 물린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베드버그를 다른 숙소에 옮기는 전파자가 될 수 있기에 베드버그에 물렸다면 모든 짐을 뜨거운 물에 삶고 햇볕에 소독해야 한다.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약국에서 파는 스프레이형 베드버그 기피제를 가지고 다니며 숙소 침구류에 뿌리는 방법이 있다. 숙소 침대가 이층 침대라면 이층이 베드버그로부터 보다 안전하고, 벽 가까이에 있는 침대보다 벽에서 떨어져 방 한가운데에 독립적으로 위치한 침대가 안전하다. 일회용 매트리스 커버를 제공하는 숙소가 많으니 제공되는 매트리스 커버를 꼭 사용하고, 여름일지라도 잘 때 긴팔과 긴바지를 착용하며 개인 침낭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