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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n 23. 2024

성부, 성모영보

그리고 유다의 배반


서쪽으로 나 있는 스크로베니 경당 입구는 동쪽 제대를 마주하고 있는데, 제대는 양쪽 벽면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형태로 신성한 제대가 놓인 공간을 독립적이게 한다.

분리된 제대 공간의 입구 위 벽면을 상인방이 가로지르는데 그곳에는 '성부 하느님과 천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중인방에는 '성모영보'가 있다. 가장 아랫단 오른쪽 벽면에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이 있고, 왼쪽 벽면에는 '유다의 배신' 그려졌는데 아래 사진에서 노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이다.





1. Dio Padre 성부


하늘의 어좌에 성부 하느님이 앉아있고, 좌우로 하늘의 천사들이 무리 지어 있다. 성부 하느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자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단이 높은 어좌(御座, throne)에 앉아 있다.



왼손에는 권력과 위엄을 나타내는 왕홀(王笏,  scepter)을 들었고, 오른손을 펼쳐 지상의 창조물들을 축복하고 있는데 세 손가락은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말한다.

 


천사들은 성부 곁에 머물며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담소를 나누거나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고 서 있다. 근엄한 권위 앞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몹시도 자유로운 모습인데 조토는 천사들의 경직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통해 성부의 자애로움을 나타냈다.





2. Annunciazione 성모영보


성모영보(聖母領報)는 성부의 명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한 사건으로 흔히 수태고지(受胎告知)라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이다. 이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1, 26-38)를 통해 전해진다.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파견된 가브리엘은 전령사답게 왼손에는 하늘의 명이 적힌 교지(敎旨)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마리아를 축복하며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마리아는 입을 굳게 다물고 천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천사와 마리아 모두 무릎을 꿇고 서로에게 경의를 표한다.



마리아는 양손을 가슴에 포개 얹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녀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다. 이는 마리아의 깊은 신앙심을 나타낸 것으로 평소에 말씀을 늘 가까이했음을 보여준다.



긴 커튼 자락이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기둥에 둘러 고정시켜 놓은 모습도 보이는데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수 있어 흥미롭다.





3. Visitazione di Maria ad Elisabetta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 이야기는 남쪽 창가 벽에 위치한 '예수의 탄생'과 연결되는 것으로 마리아는 천사의 영보를 받고서 엘리사벳을 찾아간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 마리아와 친척 관계이자 세례자 요한의 모친이다. 남편인 즈카르야 사이에 아이 없이 지내다가 천사의 영보를 통해 구세주의 앞길을 준비할 큰 인물을 낳게 될 것이라는 계시(루카 1, 5-25)를 받는데, 이는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일화와 일맥상통하며,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을 때와도 같다.



엘리사벳은 문 밖까지 마중을 나가 마리아를 환영하고 있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늘의 계획에 따라 아들의 희생을 지켜보아야 하는 같은 운명을 지닌 두 여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을까? 6개월 먼저 임신을 한 엘리사벳이 마리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마리아에 대한 마음이 더 크다는 표현이다.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가만히 마리아의 눈을 들여다보는 엘리사벳의 표정에서 걱정 말라는 위로가 전해진다. 자세히 보면 엘리사벳이 얇고 반투명한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는데, 머릿수건은 기혼자임을 나타내는 전통 복식으로 그림 안에서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는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지 않다. 요셉과 약혼식만 올렸을 뿐 아직 정식 혼인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4. Tradimento di Giuda 유다의 배반


유다의 배반은 남쪽 창가 벽에 위치한 '최후의 만찬'과 연결되는 장면이다.  지난  그리스도의 수난 1 』편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창이 난 남쪽 벽과 창이 없는 북쪽 벽에 그려진 그림들에는 차이가 있는데, 6개의 좁고 긴 창이 나 있는 벽면은 창이 차지한 면적으로 인해 한 층에 5점씩 그림이 그려져 있고, 창이 없는 벽면은 한 층에 6점씩 그림이 그려졌다. 조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부족한 그림의 수를 이와 같이 제대 벽면 공간을 통해 채웠다.

 


유다가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을 찾아가 그들에게 돈을 받고서 예수를 넘기기로 거래하는 장면인데  마태 26,14-16 / 마르 14,10-11 / 루카 22,3-6 복음서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루카 복음서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기록한다. 조토는 악마가 유다 뒤에서 그의 양팔을 붙잡고 꼭두각시처럼 조정하는 모습으로 이를 표현했다. 왼손에 돈주머니를 움켜쥔 유다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려있다.



이 장면에서 돈을 건넨 수석 사제의 눈은 유다를 향하고 있지만, 그를 마주한 유다는 악마에게 이미 영혼이 넘어간 상태라 허공으로 눈알이 뒤집혀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다. 눈이 돌았다는 관용적 표현이 700년 전에도 존재했었나 보다.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예수를 없앨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유다를 향한 엄지 손가락이 유난히 길다.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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