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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n 09. 2024

성자의 죽음과 부활 2

십자가 죽음과 애도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끌려나가 십자가 처형으로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는 성자가 이 땅에 태어나 인간으로서의 삶을 장엄하게 마친 피날레이며, 동시에 그가 인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겨낸 부활로 하느님의 또 다른 위격임을 드러내는 시발점이 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중차대한 의미에 비해 제자들이 쓴 복음서의 내용은 무미건조하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 복음서는 이 모든 이야기가 꾸며지거나 과장된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기록물이 되도록 한다. 

 

조토는 짧은 복음서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림 속에 담았을까? 그의 그림을 보기 전 몹시도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보고 난 후 조토를 향한 많은 이들의 칭송이 결코 과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바인데 만약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글을 썼더라도 훌륭한 대문호가 되었을 것이다.

 


1. Andata di Cristo al calvario 그리스도의 골고타 길


사형 선고가 내려진 후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 처형된 장소는 ‘해골터’라는 뜻의 ‘골고타’ 언덕이다. 당시 골고타는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해 있었다. 예수 사후 10년 즈음에 헤로데(영아 살해를 지시했던 헤로데의 후손인 헤로데 아그리파)의 명으로 새 성벽을 세우면서 골고타 지역이 지금처럼 도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예수와 무리들이 성문에서 나와 도성 밖으로 향하고 있다. 조토가 단순히 성경의 내용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역사와 지리 등 그림과 관련된 것들을 연구해서 그렸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군중들이 예수가 걷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다. 무리들 중에는 형을 집행하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반대하는 유다인들과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저 뒤로 예수의 수난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가 보인다. 표정에서 그녀가 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사가 나서서 마리아의 옷자락과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고 저지한다. 이에 길을 걷던 예수가 뒤돌아 어머니를 응시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예수의 눈동자가 마리아를 위로한다.



어머니와 아들이 눈빛을 주고받는 잠깐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자비한 이가 막대로 예수를 찌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고, 그 뒤로 십자가형을 행할 이의 손에 든 망치가 선명하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이 예수와 마리아의 표정과 대비를 이룬다.

  




2. Crocifissione 십자가형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 생명이 멈춰버린 그의 몸이 파리하게 창백하다. 못 박히고 창에 찔린 손과 옆구리에서 흐르는 예수의 피와 물을 천사가 황금 그릇으로 받고 있는데, 하늘의 명을 받고 일하는 그들도 끝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가슴을 찢으며 울부짖는다.



마리아는 충격으로 거의 실신 상태가 되어 부축 없이는 서 있을 수도 없다. 못 박힌 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 맞은편에는 군사들이 예수의 옷을 가져다가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다. 죽음 앞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들에게 생명은 그저 심심풀이로 가지고 노는 노리개보다 못할 뿐이다.





3. Compianto sul Cristo morto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


'애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인물들의 몸짓이 매우 극적이다. 조토 이전의 회화에서는 이러한 역동성이 없었다.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마리아가 예수를 무릎 위에 눕혔다. 축 처진 예수의 손과 발을 붙잡고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통곡을 한다. 팔을 한껏 들어 올린 제자에게서 참혹한 절망이 느껴진다.  



천사들의 슬픔은 더욱 역동적이다. 얼굴의 모든 근육이 일그러진 천사들은 슬픔에 겨워 머리를 쥐어뜯거나 얼굴을 감싸 쥐면서 온몸으로 애도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크나큰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희망은 움튼다. 모든 것이 끝인 듯했지만 저 뒤에 홀연히 서 있는 나무는 묵묵히 잎을 틔우고 있다.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복선인 것이다.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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