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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Oct 29. 2022

그림, 거대한 힘과 마주하다

자연재해_마틴, 브률로프


서기 79년 8월 24일 한 낮, 커다란 굉음과 함께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해안가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했을 때 공중의 새들은 방향을 잃었고, 땅의 나무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거대한 폭발과 화산재는 불을 내뿜는 용처럼 날아와 도시를 덮쳤다. 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멸망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여러 화가들이 전설이 된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겼다. 폼페이다.


John Martin_The Destruction of Pompeii and Herculaneum (1822)


존 마틴(John Martin)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라는 작품에서 두 도시를 동시에 휩쓸어버린 거대한 분화를 생생한 색감으로 나타냈다. 왼쪽 헤르쿨라네움은 이미 용암에 뒤덮였고, 첨탑과 돔이 보이는 오른쪽 도시가 폼페이다. 붉고 선명하게 빛나는 용암의 열기는 강력한 공기의 대류를 일으켜 검은 구름이 둥글게 윈을 그리며 하늘을 덮었다. 바다는 배들을 집어삼킬 듯 요동치고 군인들은 화산의 분출물과 열기를 방패로 막으며 시민들을 대피시킨다. 재난의 상황을 이토록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한 것이 인상 깊다.


마틴이 채색으로 거대한 자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브률로프는 재난 앞에서의 사람을 선연하게 그렸다.


KARL BRYULLOV_EL ÚLTIMO DÍA DE POMPEYA (1833)


카를 브률로프(Karl Bryullov)는 '폼페이 최후의 날'에서 사람들의 긴박함을 그렸다. 하늘은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있고, 화산재가 비 같이 떨어지고 있다. 붉은 용암과 불길이 수평선을 이루고, 번개가 하늘의 어둠을 가르며 건물이 무너진다.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여러 가지 군상을 볼 수 있는데, 건물 밖으로 탈출하려는 사람과 밖에서 건물 안으로 피신하려는 사람들이 계단에서 뒤엉켰다. 의자로 머리를 보호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 앞에 몸을 숙이고 떨어진 금화를 줍는 이가 있다. 화구 박스를 머리 위에 이고 대피하는 젊은 남자의 두상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각자 귀중품을 챙겨 대피하는 상황에서 화가는 화구를 들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손에 횃불과 향로를 들고 있는 사제와 바로 옆 어머니와 두 딸은 도망칠 생각도 없이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한다. 신앙이 이들을 재난에서 구할 수 있는가. 영혼의 구원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육신의 구원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화가는 그림 속에서 사람들이 쥐고 있는 재물과 신앙이 이들을 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 같다. 



젊은 부부로 구성된 가족이 보인다. 엄마는 어린아이와 갓난아이 둘을 양팔로 안았고,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망토로 보호한다. 위험이 닥쳤을 때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를 돌보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림 중앙에는 전복된 마차에서 추락해 사망한 여성과 그 품에 어린아이가 있다. 마차를 소유하고 있는 정도라면 높은 신분일 것이다. 금붙이 장신구들이 함께 나뒹굴었다. 신분의 높음도 죽음을 막지는 못하였다.



말들이 두려움에 날뛴다. 말을 탄 이는 고삐를 놓쳐 말의 목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연로한 아버지를 어깨에 짊어진 군인과 아버지를 도와 할아버지의 다리를 안고 있는 손주가 있고, 그 옆에 주저앉은 어머니를 설득하는 아들이 있다. 어머니의 손이 아들의 가슴을 밀어내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놓고 떠나기를 바라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놓을 생각이 없다. 오른쪽에는 막 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다. 신부의 머리는 꽃 화환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장 아름답게 빛날 결혼식이 장례식이 되었다. 신랑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신부를 일으켜보지만 그녀의 육신은 이미 창백하다.



같은 폼페이의 날을 그렸지만 작가의 의도로 확연히 다른 위대한 두 작품이 탄생했다. 화가의 다양한 관점이 관람자에게 각기 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John Martin] : The Museum Without Walls

[Karl Bryullov] : Museo del Prad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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