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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i Oct 11. 2022

푸탑벅과 단사이에서_결국 내가 문제야!

한때, 선생님은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초 절정 예민함의 시기였던 고등학교 시절, 한 수학 선생님과의 악연으로 나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괴로움에 시달렸고 입시에서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망친 주범으로 그녀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은 선생님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며 유독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나는 결코 선생님은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내가 생각했던 '선생님'에 대한 혹독한 기준은 '감정 컨트롤'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과의 악연이 시작된 그날, 그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그날, 선생님은 아마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특별한 악의가 없이 나는 그 선생님의 감정풀이 대상이 되었었을 것이다. 몹시 예민한 여고생과 불안하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혹은 아팠을지도 모르는 선생님의 감정이 가장 좋지 않은 케이스로 부딪힌 그런 날이었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 있는 그런 사건, 어떤 학생에겐 그 정도의 사건은 상처는 되었겠지만 또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최근까지도 내 인생에 가장 악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그녀를 기억할 만큼 그날 단 하루, 단 몇 분간의 그녀의 행동과 말이 매우 부적절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한국어 교사가 되고 첫 직장이었던 대학교 어학당은 학교라기보다는 학원에 가까웠다. 3개월이 한 학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같은 학생을 6개월 이상 가르치는 일이 거의 없고 학생들도 성인 학습자들이어서 나는 스스로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건네는 말을 통해 한 명의 선생님이 어떤 학생에게는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알았을 때 스스로에게 '정신 차려야 해!'라고 속으로 되뇌곤 했었다. 롬싹에 오고 해맑은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아, 어쩌자고 내가 지금 여기에 온 것인가.' 두려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첫 해라서, 서로의 낯섦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별문제 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


푸탑벅 가는 길_느리게 호흡하기 

영어 선생님인 캔드라 Kendra와 키티 Kitty가 푸탑벅 Phu Thap Buek으로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가 딱 그런 순간이었다. 폭발할 것 같은 상태. 선생님이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속에 학생들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이 폭발할 것처럼 부글거리는 그런 상태. 내가 절대로 '선생님이라면 이래선 안된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심리 상태 말이다. "좋아, 가자." 단 번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푸탑벅은 롬싹이 속한 펫차분 짱왓에서 르이 Loei 짱왓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해발 1,768m의 산이다. 롬싹에서 푸탑벅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없고 차가 없다면 트럭을 개조해 만든 썽태우를 대절해서 가아하며, 길이 상당히 꼬불꼬불하고 급하게 경사져서 사실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가 본 사람이 많지 않은 그런 곳이다. 게다가 캠핑이라니 진짜 텐트에서 자는 건 초등학교 때 캠프 이후 처음인 것이다. 그래도 힘들 땐 낯선 곳으로 가고 싶어 진다. 낯선 곳에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게도 태국인 영어 교사, 크루 오가 마침 금요일 저녁에 푸탑벅에 있는 사원에 가아한다며 우리를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유랑자의 삶은 이런 것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호의에 익숙해져야 한다. 롬싹을 벗어나 롬까오 Lom Kao를 지나 푸탑벅으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둠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비현실적으로 조용한 시골길을 달리다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서는 길 초입에서 산으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편의점에 들렀다. 달빛을 이기는 밝은 전등을 켜고 있던 편의점 앞 도로는 바람을 타고 혼인 비행을 나선 개미들의 낙하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볐다. 여기에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람이 불 때, 비가 올 때, 그리고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때에 따라 동물과 식물들이 무엇을 준비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며 마음은 고요해지고 너그러워져 아이들에게 품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곳의 호흡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매우 자연스럽게. 급할 것이 없는 아이들을 향해 다그치는 나의 속도가 문제인 것이다. 

푸탑벅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 이곳에선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많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사방이 하늘이다.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안개로 뒤덮인 아침. 키티(왼쪽)와 캔드라. 어리지만 배려심이 깊고 성실하며 책임감이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 우리는 여행 버디가 되었다. 


단사이에서_낯섦과 혼란을 마주할 때

보통 두 번째 해는 어렵지 않다고들 했다. 또다시 나의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는 '알면 사랑하게 된다'라고 했는데 나는 알면 도망가고 싶어지나 보다. 이것도 일종의 '병'일 것이다. 어떤 신드롬으로 불릴......

잘 알려진 방콕 Bangkok, 치앙마이 Chiang Mai 같은 곳이 아니라면 태국에서의 여행은 쉽지 않다. 비행기와 기차, 버스의 대중교통 수단들이 있지만 소도시 간을 연결하는 비행기는 거의 없어서 어디를 가건 방콕으로 이동한 후 비행기를 타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도 물론 공항이 가까운 도시에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기차는 방콕부터 치앙마이까지 연결하는 라인이 있어서 북쪽으로의 여행이라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롬싹에서는 기차를 타려면 버스를 타고 3시간을 이동해 핏사눌룩 Phitsanulok에 가서 다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그나마 북부와 북동부 중부를 모두 연결할 수 있는 롬싹의 지리적 위치로 웬만한 곳으로는 가장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단 평균, 7시간에서 10시간 이상의 버스 여행을 견뎌야 한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한국도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변에 태국 선생님들도 이런 불편함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래도 선천적으로 떠도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나는 힘들 땐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진다. 푸탑벅 캠핑 이후에 롬싹 주변의 좀 더 작은 도시들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르이 짱왓의 단사이 Dan Sai라는 마을에서 축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도 캔드라와 키티가 함께 가기로 했는데(사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동남아를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의 사고 소식이 잦아지면서 작은 도시로의 여행은 가능하면 서로 동행을 찾으려고 한다.) 역시 이동이 문제다. 그녀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엔 길이 험하다는 것이 태국인 선생님들의 의견이었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 라이드를 구할 수 있었다. 작년에 영어 교생 선생님으로 학교에서 일했던 닝 Ning과 그녀의 남편인 얀 Yan이 그들의 아름다운, 20년이 넘은 메르세데스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난 '앗싸'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불편하던 '호의'에 이젠 중독이 된 건 아닌가 모르겠다. 


피타콘 Phi Ta Khon축제는 매우 흥미로운 축제였다. 태국의 대부분의 축제들처럼 피타콘 축제도 불교적 요소와 풍요로운 수확을 바라는 기원을 담은 축제였다. 거기에 더해 라오스와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인연으로 두 나라의 애니미즘적인 요소들까지 결합해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색감과 소리가 넘쳐났다. 작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 나이 든 노인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축제의 날에 그들은 모두 유령이 된다. 단사이에 간 날, 그날의 빛이 유독 달랐던 것인지, 아니면 단사이의 빛이 그렇게 밝은 것인지, 단 하루 여행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날 작은 도시 단사이의 색은 비현실적으로 선명했고 그것은 바로 빛 때문이었다. 단사이에 살면 지치도록 풍부한 빛과 색깔로 금세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단사이 축제의 색. 눈이 아플만큼 선명하고 밝게 빛나는 색들이 인상적이었다.


축제를 채우고 있던 소리는 사실 나를 몹시 지치게 했다. 마을 노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북소리면 족할 텐데 거리엔 작은 도시를 온통 뒤덮을 만큼 큰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실은 차량들이 몇 대씩 퍼레이드를 따라 오가고 있었고 작은 도시 전체가 그 소리에 맞춰 쿵쿵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심장은 나의 페이스를 잃고 도시 전체를 흔드는 쿵쿵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유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사이는 색과 소리만으로 사람을 홀리는 도시였다. 캔드라와 키티는 다른 지역에서 오는 친구들과 합류해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에 있을 퍼레이드와 로켓 발사를 보고 싶어 했다. 로켓 발사는 '이산 Isaan'이라고 불리는 태국의 동북부 지역에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하는 이벤트의 일부인 것 같았다. 나는 축제를 보면서 단사이의 낮과 밤을 한 번에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닝 부부와 나는 그곳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롬싹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고 돌아오는 길에 네라밋 비팟사나 Wat Neramit Wipatsana라는 사원에 들렀다. 들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마치 다른 세상처럼 바깥의 축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축제의 흥을 돋우는 마을 할아버지들의 북 연주.
축제의 유령들. 큰 스피커에서 쿵쿵대는 음악 소리와 거리에 넘치는 유령들을 환한 빛 아래에서 보고있자니 영화 세트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길 위에 있는 이유

익숙해짐을 두려워하는 나는 새로운 것에 집착한다. 모르고 낯선 것을 만날 때 그것을 알고 싶다는 욕망도, 알아야 한다는 목적도 생긴다. 그게 바로 나를 지탱하는 에너지 인지도 모른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새로운 길에선 용기를 얻는다. 때론 그 길에서 거기 속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원초적인 깨달음 같은 것을 얻기도 하고 때론 감당할 수 없는 낯설음에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나에게 집중하다 보면 오래 묵은 생각들이 답을 찾기도 한다. '선생님'이 된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날의 사건은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답을 생각하고 있다. 매일매일 매 시간이 소중한 이유이다. 그날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 그때도 지금처럼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녀의 단 몇 분이 나에게 그 도망갈 구멍을 제공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롬싹은 아직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익숙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는 도망갈 낯선 곳들이 널려 있다. 학생들에게 나는 완벽할 수 없다. 학생들도 나에게 완벽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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