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순간을 쓰다
스티븐 킹, 김 훈, 무라카미 하루키 등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혹은 정해진 분량만큼 글을 쓴다는 사실. 각자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으나, 실제로 출간하지 않은 원고가 훨씬 많다고 한다.
출간한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출간하지 않은 원고가 많은 덕분이다. 그 만큼 매일 충실하게 글을 썼고, 많이 썼으니 실력도 상당할 테고, 반드시 책을 내야만 한다는 강박 없었으니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었으리라.
궁금했다. 그들은 과연 매일 어떤 글을 쓰는 것일까. 기계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매일 새로운 글감을 떠올리고, 그것으로 만만찮은 분량을 채운 것일까. 하루이틀이면 모를까, 매일 특별한 소재로 특별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이거 한 번 읽어 봐 주시겠습니까?"
남녀간 핑크빛 사랑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주제로 글을 쓴 적 있었다. <파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꽤 많은 분량을 채웠다.
다 쓰고 난 후에 혼자 뿌듯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원고가 대박이 나고, 수많은 독자가 열광하고, TV에 출연하고, 영화도 찍고.... 아주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내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원고를 손에 들고 읽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 솔직히 별 재미 없는데요."
"그래서, 사랑이 뭐 어쨌다는 건데요."
"지겨워서 끝까지 못 읽겠어요."
큰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돌아오는 피드백은 형편없었다. 내 실력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글 보는 눈이 엉망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글을 못 알아보다니!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실에서 시험을 치다가 바지에 오줌을 싼 적 있었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어린 꼬마녀석과 부딪혀 난생 처음 교통사고(?)를 낸 적도 있었다. 사업 실패 후 채무관계 처리하지 못해 결국 감옥까지 가게 됐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어머니는 나에게 "괜찮다!"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쓴 적 있다.
오늘은 또 뭘 써야 하나 전전긍긍 고민하다가 그냥 툭 떠오른 기억을 하나하나 적은 것뿐이었다. 별 생각도 없었고, 내가 쓴 글이 대단하다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은 같은 방 재소자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노트 두 페이지 분량의 그 글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분기 간행물에 당당히 실렸고, 태어나 처음으로 원고료도 받았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남긴 어록.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나만의 어록으로 다시 정리해 본다.
"나는 오랜 시간 위대한 글감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위대한 글감이었다."
위대한 글감은 오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 순간을 쓸 뿐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