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치가 아닌 법치가 필요하다
아편전쟁 때 함풍제는 비겁했다. 국제정세 무지는 조선의 인조와 고종에 못미치지만 그에 못지 않았다.
산업혁명 성공으로 쵝강의 군대를 가진 영국과 프랑스를 한낱 서양 오랑캐로 얕잡아 봣다.
특히 2차 아편전쟁 때 난징조약을 맺고 철군하는 영국군을 기습공격해 얻은 기적적인 승리를 오판해 강경책을 고수하다가 베이징 점령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여름별장인 열하로 도주했고, 강화헙상을 동생에게 떠넘겼다. 원명원이 철저히 파괴되고 약탈당하자 베이징 귀환을 포기했다. 마치 을미사변 이후 경복궁을 버리고 외국 공사관 도피에 유리한 덕수궁에 머물다 죽은 고종이 연삼된다.
결국 함풍제는 월동준비가 전혀 악 된 열하에서 병에 걸려 죽었다. 지도자의 무지와 오판이 빚은 비극이다.
함풍제 사후 즉위한 동치제는 5살짜리 코흘리개다. 모친이 중국 역사상 최악의 악녀로 자타가 공인하는 서태후다. 중국인들은 그 시기를 동치중흥이라고 자평하지만 서태후 섭정기는 망국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서태후가 죽을 때 남긴 유언이 여인네가 국정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라 였다니 얼마나 후안무치한 궤변이란 말인가?
서태후는 인치(人治)의 전형이다. 법치는 궤멸됐다. 고관들의 영혼도 사라졌다. 서태후의 말 한마디에 절대복종했다. 북양함대에 써야 할 돈은 서태후의 사치에 전용됐다. 요즘으로 치면 법카유용이다. 근대화의 상징인 철도도 서태후의 휴식용 호화열차로 변질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법은 눈을 감았다. 아니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감히 누가 토를 달겠는가? 피를 토하고 죽지 싫으면 침묵이 금이었다.
법치가 무너지니 간신 천하가 열렸다. 서태후에게 잘 보이면 출세길이 펼쳐졌다. 간도 쓸개도 던져버리고 서태후가 주는 개밥 한 점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용썼다. 1인 절대 독재와 간신들의 득세로 나라가 썩어 들어갔고, 결국 청일전쟁에서 참패했다. 나폴레옹이 우러한 잠자는 사자가 병든 돼지로 증멍되는 순간이었다.
1908년 서태후가 죽자 청나라 최후의 황제
선통제가 3살에 즉위했고, 3년 후 1911년 청나라는 폐업했다. 서태후의 인치 망령은 아직도 베이징을 떠돌고 있다. 위안스카이, 잡다한 군벌, 장제쓰. 마오쩌둥, 그리고 현재의 시진핑도 서태후의 인치 망령의 포로가 됐다.
청나라 망국 과정을 보면 망국의 롤모델이다. 군주는 비겁했고, 비선 실세가 설쳤다. 법치가 무너지고 인치가 지배했다. 충신은 피를 토히고 죽었고, 간신은 인치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나라곳간이 독재자의 개인금고가 됐고, 근대화를 빙자해 간신들의 뱃속만 가득 채웠다. 망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햔민국이 난세다. 너도나도 법치를 외치지만 법치가 있는지 의심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세간에는 '법은 만민평등'이라는 말이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라는 조롱의 말이 떠돌고 있다.
법치가 아닌 인치가 되는 순간 나라는 망한다. 인치는 마르크스가 먼급한 공산주의의 유령도 부를 수 있고, 서태후의 망령도 초대할 수 있다. 인치 아닌 법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