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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an 30. 2023

응급실

"띠리 리리 띠리 리리.."

영주는 아이들을 재우러 침실로 들어가는데 전화가 울렸다.

'늦은 밤에 누구지?'

휴대폰 화면을 보니 영주 어머니였다.

'무슨 일이지? 이미 주무실 시간인데'

순간 싸늘함이 느껴졌다. 안 좋은 일임을 직감하고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영주야. 아빠 쓰러져서 지금 구급차 타고 대학병원 가고 있어. 머리를 다쳤는데 피가 많이 나.."

영주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상황이 심각함을 알려줬다.

"응? 뭐라고?"

영주는 순간 너무 깜짝 놀랐다. 크게 아프신 적 없으시던 건강한 아버지인데 쓰러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당에서 운동하시다가 쓰러지셨는데 머리를 바닥에 크게 부딪히셨다는 것이다. 바닥에 붉은 피가 흥건할 정도라고 어머니의 흥분된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아빠 지금은 어때?"

"중얼중얼 혼잣말을 계속하시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참. 엄마 좀 무섭다."

"내가 바로 응급실로 갈게."

"아니야. 너 애들 재워야 하니 유서방이 와야겠다."

어떻게 쓰러지신 건지 피가 많이 나올 정도면 심각한 건데 괜찮으실까. 하필 머리라니. 당장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영주는 직접 보고 싶었다. 뇌손상이 제일 위험하다던데 혼잣말하시는 거면 의식이 불안정한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에 휩싸일 때쯤, 10년 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욕실에서 쓰러지셨던 때가 생각났다. 설마 뇌졸중으로 다시 쓰러지셨나. 전화를 끊고 파도같이 밀려오는 여러 생각들로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조차 없었다.

"오빠 내가 갈게. 애들 재워줘."

그때 침실에서 혜성이가 나오더니 영주보고 가지 말라고 울먹였다.

"영주야. 내가 갈게. 밤도 늦었고 너 지금 너무 정신없어서 장모님 옆에서 못 도와드려. 응급실은 내가 많이 가봤으니 내가 가는 편이 낫겠어. 가면 바로 전화할게."

"알겠어. 도착해서 꼭 전화 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애들을 재우는데 영주는 온통 아버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않고 어둑해진 붉은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많이 다치셨으면 어쩌지. 아닐 거야. 설마.’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엄마 울지 마. 나도 눈물 난단 말이야."

다정이가 빨개진 영주 얼굴에 손을 갖다 대며 눈시울을 붉혔다.

"응. 할아버지 괜찮겠지. 기도해야겠다. 얼른 자자."

애들을 겨우 재우고 거실로 나오는데 미주가 전화를 했다.

"영주야. 어떻게. 나 지금 택시 타고 응급실 가는데 아빠 많이 다치신 거 아니겠지."

"응. 아니길 빌어야지. 아빠 강하신 분이니까 괜찮으실 거야. 그런데 나도 사실 걱정돼. 잘못될까 봐."

"제발. 아니었으면. 흑흑."

미주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진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참을 울더니,

"오늘 하루 종일 아빠가 민준이랑 민하 봐주셨는데 점심도 우리 집에서 먹을 게 없어서 라면 드시고 간다고 하셨는데. 나 진짜 못됐어. 음식 하나 만들어 놓지 않고 라면 드시고 가게 하고."

진주는 회식 중에 미주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술을 많이 먹은 듯했다.

'휴. 아빠 오늘도 민주네 집에 가서 애들 봐주셨구나.'

민주와 민주 남편은 둘 다 은행원이라 애들 방학 중엔 시부모님이 봐주시는데 오늘은 영주 아버지가 봐주셨나 보다. 무더운 날씨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종일 집에서 애들을 보셨을 텐데 64세 할아버지가 4살, 7살 아이들을 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 안 해도 영주는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을 봐주시는데 끼니는 든든하게 드실 수 있게 미리 챙겨서 놔두지. 라면이 뭐야.’

자주 이런 식으로 애들을 맡기는 진주를 보면서 너무 얄미웠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자기가 못됐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정말 들어주기 싫었다.

'아빠 나이 있으신데 진주 너 애들만 생각하지 말고 아빠 좀 생각해.'

속상한 마음에 따끔하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 싸움이 나면 더 복잡해질 것 같아 영주는 꾹 참았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진주는 엄마 아빠 용돈도 훨씬 많이 드리는데.'


전화를 끊고는 영주는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며 답답한 마음에 커튼을 걷어서 창밖을 바라봤다.

깜깜한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홀로 칠흑같이 깜깜한 어둠을 밝히려고 애쓰는 듯했다. 영주는 영주 아버지도 저 달처럼 홀로 부단히 싸우고 계실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영주야. 넌 왜 아빠말을 이렇게도 안 듣니. 자기 멋대로만 하고."

대출을 해서 딸자식 가고 싶어 하는 대학, 어학연수 보내 놨더니 그 좋은 회사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하셨던 아버지의 비수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빠를 자랑스럽게 해 드린 적이 있었나.'

어렸을 적에 영주는 아버지에게 미주보다 더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운 첫째 딸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과연 그러고 있을까. 매번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자기 맘대로 인 이기적인 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진주가 아닌 영주 자신이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내색 힘든 내색 한번 없던 강직한 아버지. 드물긴 하지만 어렸을 적에 술을 많이 드시고 온 날엔 늘  영주와 동생들을 깨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오늘따라 그날 그렇게 엉엉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유독 더 떠올랐다.

영주 아버지는 5형제 중 첫째다. 어릴 적부터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대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다 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보다 성적이 더 뛰어났던 둘째 아들의 대학을 지원해 주셨다. 아버지는 가고 싶어 했던 대학을 갈 수 없었고 스무 살이 되면서 바로 돈을 벌러 다녀야 했다. 고기잡이, 배달일, 공사장 등에서 일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셨고 꾸준함과 끈기로 소방서장까지 일궈내셨다. 영주는 그런 아버지가 늘 존경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아빠는 내가 자랑스러울까.'


영주는 커다랗게 밝은 빛을 내뿜는 달에게 간절히 기도를 해본다.

'제발 아버지에게 나쁜 일 없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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