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섭 님 보호자분 되시나요? 오영섭 님께서 일어나시면 안 되는데 일어나셔서 퇴원하시겠다고 자꾸 그러시네요. 머리를 다치셔서 감정 조절이 어려울 수 있거든요. 진정제 넣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립니다. 동의가 필요해서요."
아침 일찍 영주에게 영주 아버지가 입원한 중환자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휴. 정말 무슨 큰일 있는 거 아니겠지.'
코로나로 중환자실은 보호자 출입 및 면회가 불가능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상태인지 오로지 간호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상태를 볼 수도 없고 환자와 통화도 되지 않아 오로지 간호사 말만 듣고 판단하려니 답답했다.
"알겠습니다. 넣어주세요. 그런데 상태는 어떤가요?"
"오영훈 님께서는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오늘 며칠인지 그리고 본인 이름도 말씀하시고 기본 소통하는 데는 아직까지 괜찮아 보여요. 다만 새벽에 구토를 하셔서 뇌압 상승이 의심되어서 아침 9시에 CT 찍었어요."
"네. 다행이네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발 큰 문제없었으면.'
영주는 누구든 붙잡아 아버지 상태가 지금 어떠냐고, 의사 선생님은 별다른 말씀 없으셨냐고 계속 묻고만 싶었다. 아버지를 직접 볼 수 없으니 너무나 불안했다.
영주의 아버지는 머리 뒤쪽에 금이 가서 골절 상태이며 일부 뇌출혈이 있는 상태라고 했다. 다행인 것은 수술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담당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영주는 살았구나 싶은 안도감에 하루 종일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요 며칠을 달을 보며 몇 번이고 기도했는데 그 간절함이 닿은 듯했다.
영주 아버지는 일주일 뒤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그곳은 보호자 1명이 함께 있을 수 있었다. 간병을 해야 했기에 곁에서 항상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 낮밤으로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라 영주, 미주, 진주는 아버지 간병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영주 어머니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을 하고 있었고 집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리다 보니 병원을 자주 오고 가는 게 힘드실 것 같았다. 병원에 가까이 살고 있는 영주 자매들이 아버지를 간병하기로 했다. 민주, 미주는 둘 다 직장인이라 평일 아침부터 오후 아이들 하원 전까지는 영주가 맡았다. 영주는 아픈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평일은 내가 아침에 애들 등원시키고 바로 병원으로 갈게. 그런데 오후 4시부터는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려울 것 같아."
"그때는 잠깐 엄마 오시라고 하자. 엄마 일이 2시 되면 끝나니 병원 오셔서 저녁쯤에 우리랑 교대하면 되지. 밤엔 우리 셋이 돌아가면서 하자."
"응? 밤에?"
밤이 문제였다. 영주는 남편이 늦게 퇴근하거나 일찍 출근하는 날엔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밤 병간호가 힘들 것 같았다. 영주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미주와 진주는 시부모님께서 근처에서 아이들을 봐주시니 밤 간병만이라도 둘이 맡아줬으면 했다. 당연한 듯 셋이 교대로 하자고 하는 말에 영주는 힘들 것 같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밤 간병은 병원에서 자는 거고 일반 병실이다 보니 간병인 침대가 여간 좁고 딱딱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미주와 진주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낮 간병하니까 밤 간병은 둘만 하라고 할 수 없었다. 영주도 다음날 애들 등원시키고 병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회사를 안 다닌다는 이유로 밤 간병까지 맡아야 했다. 영주는 불안했지만 내가 맏이니까 좀 더 하자고 생각했다.
영주 세 자매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주와 미주 진주는 아버지 간병을 잘해서 금방 낫게 해 드리자며 힘들어도 지친 내색 없이 서로 위로하며 그렇게 3주를 간병했다. 여러 검사와 치료를 받으면서 두통, 복통을 호소하던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호전되었다. 3주 후 퇴원을 하게 되었고 집에서 매일 머리 부위 소독과 상태 경과를 위해 옆에서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 달 후 다음 검진 때까지는 술, 담배, 운전 절대 하시면 안 돼요. 머리를 다치신 거라 감정 조절이나 후각, 미각이 조금 떨어지실 거예요. 대부분 돌아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항상 잘 체크하셔야 해요."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의사의 말에 당분간 영주 아버지 곁에서 돌볼 보호자가 필요했다. 영주는 순간 다시 한번 부담감이 훅 몰려왔다.
'엄마는 일하시느라 아빠 옆에 항상 있을 수 없고, 상처 소독도 해야 하는 데 미주와 진주는 회사에 가야 하니 병원 간병 때처럼 매일 가야 할 직장이 없는 내가 또 해야 되는 거겠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내가 부모님 댁까지 매일 또 이 생활을 반복해야 되겠구나.'
사실 3주 병간호에 영주는 살짝 지쳤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그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점점 줄면서 오롯한 내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미주와 진주는 사실 회사를 무기 삼아 밤간병하며 피곤한 날엔 그 다음날 오전 반차나 하루 연차를 내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영주는 무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매일을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했다.
"당분간 아빠 옆에서 계속 지켜보긴 해야겠어. 또 부딪히시거나 쓰러지실 수 있잖아. 상처도 아직 다 아물지 않았고."
미주와 진주는 계속 이 말만 되풀이할 뿐 퇴원 후 보호하는 것에 대해선 일체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영주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당분간 애들 유치원에 보내고 왔다 갔다 할게."
"응. 주말엔 나랑 진주가 해볼게. 평일만 해줘."
평일은 5번. 주말 둘이서 한 번씩.
매일을 아버지 옆에서 소독해 드리고 지켜보면서 상태가 호전될수록 영주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미주, 진주처럼 돈을 버는 직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일이 있는데 왜 나만 매일을 이렇게 와 있는 걸까. 내가 여기 있는 시간에 미주, 진주는 직장 일하며 돈도 벌잖아. 오전 반차나 연차 내고서 한 번쯤은 바꿔줄 수도 내가 있다고 오지도 않고 자기들 개인적인 일 처리하고. 난 돈도 못 버는데 내 시간조차 없이 매일을 왔다 갔다 하기 바쁘네.'
영주는 자신이 미주, 진주가 아버지 옆에서 돌봐야 하는 시간을 대신해 주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직장 다닌다며 영주한테 모든 걸 맡겨놓고 일하고 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내가 얻는 건 무엇일까.'
자꾸만 계산적이게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불효라 생각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영주는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와 이렇게 오래 시간을 함께 해보긴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무뚝뚝함과 차가운 표현들이 처음에는 오래만이라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져 갔다. 아버지는 주로 낮잠을 주무시거나 텔레비전을 보셨다. 두통이 드물지만 여전히 있으셨고 예민한 아버지는 오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영주는 아버지 기분을 좋게 해 보고자 관심 있는 것들을 물어보면 퉁명스럽게 대답하시는 게 일상이었다. 둘이 있지만 쓸쓸하고 외롭게만 느껴지던 시간은 영주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좀 나아졌다. 영주는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강아지처럼 환한 미소로 어머니를 반겼다. 영주에게는 영주 어머니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집으로 곧 갈 수 있는 기대감과 대화할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영주는 또 애들 하원시간에 맞춰 부모님 댁에서 나서는데 미주 전화가 왔다.
"집에 가는 거야? 오늘은 아빠 어떠셨어?"
매일 전화로만 아빠 상태를 물어보는 미주, 진주가 얄미웠다. 그렇게 궁금하면 퇴근하고서라도 오면 되는 거였다. 영주는 자신의 힘듦을 좀 알아달라는 마음에서 미주에게 투정을 좀 부렸다.
"응. 그런데 아빠 기분 맞추기 너무 힘드네. 나한테 너무 쌀쌀맞아서 혼자 병간호하는 게 외로워. 오늘은 상처 소독하는데 똑바로 못한다고 갑자기 윽박지르시질 않나.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아빠 혼자 다 하시라고 말하려는 거 꾹 참고 옥상에서 기분 삭이고 내려왔어. 병간호하는데 혼나긴 처음이네."
"아빠 원래 그러시잖아. 난 요즘 일이 너무 바빠져서 정신이 없네."
영주는 어릴 때부터 늘 느꼈지만 미주에게 힘들다고 얘기하면 위로나 공감은커녕 오히려 본인 힘든 걸 말하거나 전혀 다른 걸 얘기했다.
"아빠 머리 상처는 많이 아물었어. 진물도 훨씬 덜 나고."
"오. 다행이다. 아빠 아픈데 우리가 이해하고 맞춰야지. 나 아빠 밖에서 쓰고 다니실 겨울 모자 사려는 데 어떤 게 좋을지 몰라서 내가 사진 보낼게 골라줘. 한 세네 개 정도 살까 해."
"겨울 모자 있으면 좋지. 지금 한 개밖에 없거든. 그런데 미주야 나 솔직히 요즘 우울해. 내 시간도 없고, 매일 차 운전해서 왔다 갔다 하려니 힘들고."
영주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알아달라고 다시 한번 얘기를 해봤다.
"우리도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참. 진주가 50만 원 줬다며. 우리가 돈도 줬잖아. 그런데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우린 안 힘든 줄 알아. 회사도 바쁜데 신경 써야 하고."
50만 원. 아버지 병원 퇴원비를 세 자매가 모아서 내려다가 아버지가 돈 안 받겠다고 거절하셔서 지금 나한테 있는 진주의 돈. 영주는 진주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진주가 갑자기 영주에게 차 기름값이라도 하라며 주지 말라고 했다. 영주는 미주에게 이렇게 돈을 받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안 받겠다고 거절하고는 만나면 주겠다고 했다. 영주가 받은 돈이 아니었다.
"50만 원? 나 그거 받은 적 없는데. 미주 너 웃긴다. 나 그 돈 안 받았거든."
영주는 미주의 말이 우리가 돈도 줬으니 돈 받은 값을 하라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몹시 나빴다. 미주가 그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영주는 세 자매 중에서 첫째지만 제일 돈벌이가 없고 늘 돈을 걱정하며 살고 있었다.
"오미주. 너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해. 솔직히 내가 너희들 시간 대신 해주는 거잖아. 너희들 돈 벌 시간에 난 매일 아빠 간호했다고!"
"참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빤데 넌 어쩌면 여기서도 돈 생각, 너 힘든 것만 투덜 돼? 시간 여유 있는 사람이 더 간호하면 안 돼? 내가 너처럼 회사 다니지 않고 애들만 보는 거였으면 투덜 되지 않고 매일 아빠 곁을 지키겠다!"
"너 아빠 퇴원하고 집에 한 번이라도 찾아간 적 있어? 그렇게 곁에 지키겠다는 사람이면 밤에 퇴근하고서라도 잠깐이라도 들렀겠다."
"진주도 나랑 같은 생각이야. 너만 힘들어? 진짜 실망이다. 다신 전화하지 마!"
띠띠띠띠. 미주는 다신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영주와 미주 서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해서는 안될 말들을 쏟아내 버렸다.
영주는 너무나 짧은 순간에 전개된 상황들에 놀래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진주도 같은 생각이라고?'
영주는 미주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되어서 진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주는 그 날밤 계속 영주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영주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힘들다고 외롭다고 좀 얘기한 것뿐인데. 속마음 털 데가 없으니 미주에게 한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싸움이 날 일이었나 싶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영주가 없는 자리에서 미주와 진주 둘이서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배신감이 들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
고생한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 미주와 민주에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시부모님이 애들 봐주시니 육아가 쉬워 보이나. 워킹맘 같지 않은 워킹맘 주제에 최고 힘들다, 최고 바쁘다고 하며 육아하는 사람을 존중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니들이 내 동생이라니..'
영주는 참아왔던 속상함과 배신감에 화가 치밀었다.
'나도 다신 연락 안 해.'
그렇게 연락이 끊긴 지 한 달, 6개월, 어느덧 1년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