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심상치 않은 얼굴에 어른들은 직감한 듯했고, 표정으로 눈으로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보셨다.
서른 다섯 동갑내기 부부로 결혼 생활은 평안한 듯했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에 충실했고 서로를 사랑했으며,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임신이라는 큰 문제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 전 검사도 좋았고 결혼 후아이는 당연히 주어지는 거라 생각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아이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결혼 3년 차 30대 후반이 되니 마음은 조급해지고 조급해진 마음은 스스로를 괴롭혔다.
임신에 좋다는 음식과 약, 몸을 만들기 위한 운동과 산행 심지어 2년간 채식도 했다.
일상은 산부인과, 한의원이 차지하고 용하다는 점집도 끌려 다녔다.언제 일지도 모르는 미래의 아이에게 저당 잡혀 희망과 절망의 한 달 한 달을 보냈다.
그럴 때 들려오는 지인들의 임신소식, 연예인 누구누구가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들에 나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이문제를 아는 체하며 내 인생을 재단하려 드는 오랜 친구와 결별하는 일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고 삶의 방향도 잃어버렸다.
힘겨운 생활은 5년 더 이어졌다. 어느 날 남편은 술의 힘을 빌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고 남편의 한 마디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 아이가 있던 없던 우리의 인생을 살자."라는 말에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 내가 먼저 하고 싶던 말이 남편의 입으로 나왔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 저녁 시댁에서 부모님을 마주하게 됐다.
남편은 준비했던 말들을 담담히 해나갔고 마지막으로 "죄송해요. 저희는 지금 행복한 하루를 살게요. 이해해 주세요"라고 덧붙였다. 부모님도 어느 정도 체념한 듯 순순히 받아들이시고 우리의 선택을 지지해 주셨다. 결혼 8년 동안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툭하고 끊어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 순간 그동안의 서러움과 외로움 원망들이 뒤섞여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어머님도 내 등을 토닥이며 아무 말 없이 우셨다.
그날 이후 가족뿐 아니라 지인과 친구들 모두에게서 더 이상 우리 아이 문제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인생의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남편의 말은 우리를 다시 살게 했고 인생의 큰 산을 함께 넘은 동지가 되어 더욱 끈끈한 부부가 되었다. 불쑥 마음속에 파도가 치는 날도 있었지만, 서로를 의지해 파도를 넘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게 힘이 되어주었다. 사람마다 다른 인생을 살듯 결혼 생활도 각자의 선택이다. 그날의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