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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욱 Apr 07. 2023

늦은 엄마-1

여름밤 열대야에 지치고 에어컨 바람도 버거워질 때  침대에 누워 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며 "어차피 잠 안 오는 밤, 별 보러 갈래?" 한마디에 곧장 천문대로 향했.

예약 없이 방문한 탓에 천문대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깜깜한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는 풍경 만으로도 시원하고 평화로웠다. 그렇게 둘만의 세상에서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는 , 그해 여름 시부모님 두 분이 한 달 차이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님의 떨리는 전화 목소리 "아버지가 화장실 앞에서 쓰러졌는데, 어쩌지... 어쩌지..." 놀란 어머님을 진정시키고  119에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시댁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구급차는 도착해 있었고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병원으로 후송 중이셨고, 우리는 뒤따랐다.


심근경색이었다.  근처 병원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어 다시 3차 병원으로 후송되셨다.

촌각을 다투는 병세에 지체된 시간만큼 위중했지만, 아버지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내고 계셨다.

일찍 돌아가신 친정 아빠를 대신해 사랑을 주신 아버지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에게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떨고 있는 순간에도 아버지는 강했고, 본인의 삶을 켜내려 사투를 벌이셨다.

장담할 수 없는 수술도 무사히 마치셨고 , 힘든 중환자실 생활도 이겨내셨다.


통의 순간은 여기서 끝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줄 았았던 우리 가족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사람이 어디까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버지 퇴원 한 달 후 퇴원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어머님이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님의 병환과 어머님의 병환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천지 차이였다. 대장암 수술과 12번의 항암치료, 그 지난한 과정은  아이 없이 가뿐히 움직일 수 있는 우리 부부 몫이었다.

남편은 두 분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느라  그해 휴가, 연차를 다쓰고도 모자랐고, 아버님 끼니와  항암치료로 지친 어머님 보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생각할 겨를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일어난 일들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라고 마음먹었다. 우리의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부모님을 돌보는 일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두 분을 위한 시간 보내는 동안 다행히 부모님   이겨내고 계셨다. 그러나 난 다른 곳에서 또 인생의 쓴맛을 봐야 했다.


부모님을 돌보느라 동동 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동서가 임신을 했다.

이미 두 아이가 있던 동서가 생각지도 않게 쌍둥이를 임신했단다. 이 사실은 한동안 나에게 비밀이었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남편에게 괜한 트집으로 화를 냈다. 그동안 비밀로 한 가족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바로 얘기하지 못한 동서의 마음도 알지만, 그때 나는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어떤 맥락도  없이 그냥 화가 났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나의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던 것도 나였고, 부모님을 돌보기로 한 것도 나였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모든 시간들이 억울하고 화를 내다니 스스로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 온몸의 힘을 끌어 모아 동서에게 축하 인사와 축하금을  보냈다. 마땅히 축하받을 일에 동서는 또 얼마나 내 눈치를  봤겠는가, 편으로 동서가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또 내 마음의 폭풍은 잦아들었다. 귀여운 두 녀석이 무사히 세상으로 나오고 돌이 되었다. 그 무렵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부모님은 좋아져 생활의 불편함도 없게 되었다.


돌잔치를 치르고 우리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딱히 말은 없었으나  남편은 그동안 고마움의 마음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거 같다. 남편의 진심에 부모님의 마음까지 보태져 떠난 여행은 평화로웠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 같았다.  인생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몰아친듯한 시간, 그래도 옆에 있는 사람으로 인해 견딜 수 있었고, 그  또한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제주도 여행에서 남편이 얘기했다,

"여기서 더 이상 나쁜 일이 있겠니? 인생의  고통 총량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 다 치른 거야, 이제 좋은 일만 남았을 거야"

나는 '피식' 웃었고 농담처럼 한 그날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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