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성욱 Apr 14. 2023

늦은 엄마-2

어머님은 수술과 항암, 배변 주머니, 그리고 배변 주머니를  빼고도 조절되지 않는 배변 문제 때문에 잠시의 외출도 힘들었다.

시간이 걸려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면서  깐의 외출이 허락되고 , 외식을 하실 수 있게 되고, 또 몇 시간의 외출이 가능해지셨다.

어머니는 2년 동안의 투병시간이 지나 친구분들이랑 하루 나들이도 가능해질 정도로 건강을 되찾으셨다.

눈물 날 정도로 기뻤다. 어머님의 병환으로 친구분들도 여행을 미뤄가며 어머님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런 염원들이 어머님을 켰다.


추석을 앞두고 시부모님 남편이랑 네 명이 장을 보러 시장으로 마트로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 딱히 많은 음식을 하지는 않지만, 그냥 그렇게 함께 하는 게 좋았던 거 같다. 그해 추석은 몇 년 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이었다. 냄새에 민감지신 어머님 때문에 평소에 음식은 거의 우리 집에서 만들어 어머님집에 날랐다. 그런 탓에 기름 냄새를 풍기는 명절 음식은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좋아진 어머님 덕분에 기분 좋게 명절다운 명절을 준비하는 추석이었다. 모든 숙제를 치고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아깝지 않았다.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했다. 더욱이 그해 추석은 주말까지 겹쳐 명절 연휴가 길었다. 원 없이 놀고먹고 즐겼다.

그래서인지 몸이 너무 힘들었다. 몸살 기운도 있고 너무 졸려서 어찌할 봐를 모를 지경이었다. 몸의 다름이 느껴졌다.

다행히 연휴가 길다 보니 병원들이 연휴 동안 기간을 나눠서 진료를 하는 곳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고 간 곳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날짜를 잘 못 안거 였.

'이런..... 너무 힘든데, 이대로 좀 쉬었으면 좋겠다.' 순간 눈에 마사지샵이 들어왔다.

 '그래, 피곤해서 그런가 보니 마사지받으면 좋아지겠지' 란 생각에 들어간 곳에 다행히 예약을 취소한 분이 있어서 바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따뜻하게 누워서 마시지를 받다 보니 잠이 왔다. 그동안의 긴장과  피곤이 흩어지면서 스르륵 잠이 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나 생리 언제 했지?' 비교적 정확한 주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몸의 변화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마흔다섯,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기에 이 정도 변화는  나이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혹시...' 하는 쪽으로 흐르다 보니 모든 것이 이상했다. 좀  빠른 폐경의 수순을 밟는 건가. 아니면, 설마, 가능하다고,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테스트기를 샀다. 선명한 두줄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이런 게 쉬운 거였어, 어떡하지, 낳을 수 있을까? 건강할까?  나이 마흔다섯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날 저녁 남편과 중국집에서 짬뽕 그릇을 앞에 놓고 았다. 두어 젓가락 먹던 남편에게 말했다.

"나 임신한 거 같아"

   "........"

 "아이 생긴 거 같아"

 "......... 왜?"

뭐 이런 바보 같은 대답을 하다니 서운했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사람도 상상 조차 하지 않은 일을 만나고 당황했구나

그래도 그렇지 대답이 '왜?' 라니 남편은 그날의 '왜?'는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놀림감이 되었다.


당황스러운 추석 연휴를 보내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임신 맞습니다. 벌써 7주나 됐네요."

"축하해요. 가끔 있어요. 이런 경우가"  

그간의 노력과 포기의 순간 상처들 장장 10년의 시간이 '이런 경우' 란 한마디에 '퉁'쳐졌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진료실을 나오니  병원 모든 스태프들의 눈에 나에 대한 애정과 축하가 담겨 있었다.

축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장실로 들어갔다.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요즘은 늦게 낳는 분들도 많고, 엄마랑 아이가 건강하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어제 까지 복잡했던 생각들이 초음파 사진을 받아 든  한순간에 정리가 되었다.

초음파 사진 속 젤리곰 같은 아이를 본 남편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대기실 구석에서 양가 부모님 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버지가 받으셨다. 화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까지 흘러 나에게 까지 들렸다.

"이 새끼야! 너 꿈꾸냐? 장난도 도 가 있는 거야 마!" 평소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진짜 화가 많이 나신 목소리로 '뚝' 전화를 끊으셨다.

다시  전화 걸었을 때 아버님은 울고 계셨다. 일흔의 남자가 아이처럼 펑펑 우셨다. 장난으로 치부하고 끊으셨지만, 전화를 끊으시고 장난이 아님을 바로 알아차리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정적뿐이었다. 남편이 다시 "7주 됐데요" 란 말에 정신을 차린 엄마는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조심해, 얼른 집에 들어가서 누워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에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너무 기쁜 일에 조금이라도 부정의 기운이 담기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의 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부름에 병원을 나와서 우리는 시댁으로 향했다. 어른들은 기쁨의 환희 대신 무사히 출산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우리를 응원하셨다.

몇 번 산부인과 검진 후 지인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자신들의 일 보다 더 기뻐해 주는 사람, 그리고 기쁨을 눈물로 대신해 주는 사람들의 사랑과 염원으로 마흔다섯의 임산부는 마흔여섯,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는 부부에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제주에서 남편이 농담처럼 한 "이제 우리 남은 인생에는 좋은 일만 남았을 거야" 란 말이 실감 났다. 아이의 존재가 나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온 세상의 아름다운 말, 좋은 것들은 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이든이는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내가 보던 반쪽의 세상을 온전히 다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아이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며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전 02화 늦은 엄마-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