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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성욱 Apr 23. 2023

육아는 체력전

새벽 2시 30분 아이의 "응애, 응애" 알람소리에 비몽사몽 눈을 반쯤 겨우 뜨고 젖병에 분유를 계량해 넣고 물을 붓는다. 

의식이 없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다 식탁의자에 발을 부딪쳐  '으악'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를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아이가 놀랄까 아픔을 속으로 삼킨다.

배고파 우는 아이를 안고 젖병을 물린다.

발가락이 너무 아파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아이의 배고픔이 먼저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트림을 시다시 눕혀 재운다.

새벽 3시 더 자고 싶어 누웠지만, 발가락이 욱신거려 잘 수가 없다.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 거울 속의 나를 본다.

힘없이 늘어진 머리카락, 핏기 없 부은 얼굴에 온몸은 맞은 듯 무겁고, 조금 전 식탁의자에 부딪친  발가락은 욱신거린다.

한 없이 초라하고 우울한 새벽이다. 간절히 원하던 아이를 옆에 재우고 돌보며 더없이 행복하지만, 하루종일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에 부친 것도 사실이다.


이든이가 태어난 지 꼭 두 달째이다

그동안은 양가  어머님들 도움으로  지내왔으나  지금부터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랑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의 탄생은 인생에 다시없을 환희의 순간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환의 뒤편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이 든 엄마의 처지를 이해했는지, 아이는  순하고 잠투정도 없는 편이었다.

"이렇게 순한 애는 열도 키우겠다. 너네는 얼마나 까탈스러웠는지 알아?"

아이를 주시던 친정 엄마는 힘들 다는 나를 나무라며 한 마디 했다. 그러나 만만한 게 친정 엄마라고 한 마디 쏘아붙인다.

"엄마, 엄마는 그래도 20대 때 우리를 낳았잖아? 나는 마흔 중반이라고!"

그렇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아이를 돌보면서 가장 힘든 건 회복되지 않는 몸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몸의 상태를 뒤로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회복의 시간은 더 멀어진다.

아이는 사랑하기 위해 낳는다지만, 아이는 체력으로 돌본다

체력이 받쳐줘야 사랑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육아는 같은 일의 끝없는 반복이다

시간 맞춰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시의 내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노동의 반복이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아이의 요구에 응답해 주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은 남편의 퇴근시간이다.

물론, 퇴근한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남편을 아이옆에 붙여 두면 잠시의 자유가 주어진다.

그 시간에 씻고 식사 준비를 한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육아에 협조적이었고, 아이 수면 패턴은 규칙적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이도 나이 든 엄마의 처지를 이해하는구나'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다는 연대감이 나를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다고 본질 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체력을 기르고 몸의 회복을 위해 엄마도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새벽 수유를 마치면 옷을 갈아입고 나가 무조건 걸었다. 남편 출근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모두 잠든 새벽에 혼자 걷는 시간은 운동한다기보다 잠시의 해방감을 주었다.

내 의지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벽 두 시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 시간이 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되었다.

걸으면서 느끼는 행복감혼자인 시간을 보내는 자유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빛나게 해 주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새벽기상은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시간이었으나 , 수유의 횟수가 주는 만큼 그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육아서를 시작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책들을 읽고 신문을 으며 하루 종일 소비할 에너지를 만드는 시간으로 채워나갔다.

이든이는 항상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나의 의지는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아이는 알려 주었다.

아이는 내 인생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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