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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Nov 11. 2023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62

#62 예순두 번째 밤_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뉴스에서는 '수원 영아 유기 사건'에 대한 기자의 리포트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없습니다."


기자의 마지막 멘트가 귓속에서 맴돌다 천천히 공중으로 흩어진다. 시든 꽃잎을 삼킨 듯 입맛이 쓰다. 아이에게도 이 멘트가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옆에 앉아 책을 읽다 갑자기 눈을 맞추며 묻는다.



"아빠,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없는 거예요?"

"왜? 그럴 수도 있지.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정말요?"


"그래도 보통은 부모가 아이를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아기가 엄마, 아빠를 선택할 수는 없어요?"


"무슨 말이야?"


이 아이는 무얼 알고 싶은 걸까? 아니면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세상의 편견을 알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어느 쪽인지 심히 궁금하다.



"아빠, 저는 제가 스스로 엄마, 아빠의 아들이 되기로 한 거예요."

"어떻게?"


"태어나기 전에 소울(soul)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어요."

"그럼 소울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해서 우리 집에 온 거야?"


"네, 맞아요. 공부를 잘하는 순서대로 가고 싶은 집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소울 세계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어?"


"아기연습생 공부를 했죠."

"아기연습생은 뭘 공부하는데?"


"자세한 건 다 잊어버렸어요. 벌써 십 년이나 지났잖아요."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나는 아이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사실이든 믿음이든 결론은 같을 테니까. 그래도 아기연습생이라니... 아이는 이전 단계의 삶을 연습생이라 표현하곤 했다. 동자승을 스님연습생이라고 말한 건 안비밀.^^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우리는 증명불가능한 벽을 마주할 때, 믿음의 땅으로 벽을 밀어버리곤 한다. 애초에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빠의 믿음을 시험하는 아이의 물음에는 그럴듯한 논리가 필요하다. 아빠를 향한 아이의 믿음을 지켜줄 적당한 변명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말로 아이의 믿음을 지켜주어야 할까. 믿음에 관한 질문은 매번 어렵다.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뭘? 소울 세계를 기억하냐고?"


"아니요. 누가 선택한 거라고 생각하시냐고요?"

"아빠도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다고 생각해."


"왜요? 아빠는 소울 세계 기억하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조금 전 뉴스에서 나온 사건을 보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왜요?"


소울 세계? 어디에서 비롯된 생각일까? 아이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보스베이비>(2017), <코코>(2018), <소울>(2021)과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름대로 변형된 것 같다. 역시 영상 매체는 참 힘이 세구나 싶다.


생각해 보니 그 변형의 과정에 내가 있는 것 같다. <코코>를 보고 현생은 전생(사전세계)과 후생(사후세계)을 전제하는 말일 테니, 충분히 사전세계와 사후세계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나눈 적이 있다.


그러니 뭐라고 답해야 하나. 까마득하다.



"음... 전에도 말한 적 있는데 아빠는 사람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

"숙제이야기요?"


"맞아. 숙제이야기. 그게 뭐든 지난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

"기억나요."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삶이 너무 불공평한 경우가 많잖아. 그 아이처럼. 그러니까 더 길게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백 번의 삶 중에 한 번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럼 아빠는 사람들이 소울세계를 왜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지금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이겠지. 지난 번의 삶을 기억하면 그건 이번 삶의 답을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반칙이잖아."


아이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숙제와 시험이라니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가버린 걸까. 아이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건 그렇고. 우리 아드님은 왜 우리 집에 오셨나?"

"엄마, 아빠가 친절하고 맛있는  제일 많이 준다는 소문을 듣고서요. 행복한 돼지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행복한 돼지?"

"저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건 아주 훌륭한 생각이야.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행돼 씨' 어떻게 소문만큼 만족하세요?"

"네, 만족해요. 오늘은 <아미성>에서 파는 짜장면이 먹고 싶어요. 그럼 행복할 거 같아요."


"이 녀석...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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