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 제외
아이를 뒷좌석에 안전하게 태운 남자는 조금 전 아이를 스캔하며 확인했던 주소를 입력했다. 몇 글자 누르기도 전에 아래쪽 지난 목적지 리스트에 해당 주소가 나타났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지나갔을 일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위트빅로 307.
그가 몇 번이나 출동했던 곳.
‘기억 학대 아동 보호센터’.
강제 기억 조작이나 판매 등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가는 곳이다. 남자는 화면에 떠 있는 주소를 잠시 응시했다. 아이를 그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대를 쥔 손가락이 굳어버린 듯했다. '여기서 왔다고?' 뒷좌석의 아이를 힐끗 바라봤다. 아이는 조용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딘가를 뚜렷이 보는 모습은 아니었다.
남자는 조용히 자율 주행 모드를 껐다. 점점 더 거세지는 눈발과 가로등 불빛이 섞여 도로 위로 흩어졌다. 유리창 너머 세상은 와이퍼가 지나갈 때만 잠깐씩 또렷해졌다. 아이도 남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는 눈 속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낸 뒤 나나는 문을 닫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가게 안을 채우고 있던 두 사람의 기척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나는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더 이상의 예약은 없지만 그렇다고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나나는 모니터를 켜고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앉았다. 화면이 켜지자 접수된 요청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대부분은 프로그램이 알아서 접수하지만 그 기준에 걸리지 않는 것들은 이렇게 직접 확인해 주어야 한다.
첫 번째 메시지를 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한테 가스라이팅 당했어요. 근데 정작 본인은 심각하게 생각 안 해요.
이런 기억도 판매 가능할까요?”
나나는 잠시 읽다가 마우스를 움직였다.
취급 제외.
다음 메시지를 열었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데요. 알고 보니 매칭 알고리즘 오류라고 하네요. 상대방은 애초에 저와 매칭될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다음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그날 저녁 기억을 팔고 싶습니다.”
역시 취급 제외. 요청은 계속 이어졌다.
“회사 욕한 글을 비계에 올린 줄 알았는데 글쎄 회사 공식 계정이었어요. 그날 회의실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나요. 그 기억 좀 제발 사주세요.”
취급 제외.
나나는 몇 개의 메시지를 빠르게 넘겼다. 대부분 비슷했다. 잊고 싶은 기억, 지우고 싶은 순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기억을 사는 곳이 아니다. 기억상점에서 취급하는 기억의 기준은 단순했다.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 순간을 살아낸 사람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기억일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사 간 사람에게도 작은 도움이 될 것.
그게 전부다.
나나는 다음 메시지를 열었다.
“요즘 제 기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날은 분명히 겪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사진도 없고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너무 선명합니다.
이런 기억도 판매할 수 있을까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차라리 팔아버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메시지는 드물었다. 가끔 장난처럼 올라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분명히 겪은 기억인데 그 어떤 기록도 없다는 사람들.
나나는 일단 자동 회신 메일을 보냈다. 기억상점에서 취급 가능한 기억 목록과 거래 조건이 정리된 안내 메일이었다. 그들이 실제로 읽어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보내야 한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거리가 어둑하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나나는 뻑뻑해진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슬슬 정리할 시간이었다. 모니터에 떠 있는 마지막 요청 몇 개를 빠르게 훑어본 뒤 창을 하나씩 닫았다. 의자를 조금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날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가볍게 흔들렸다.
한 중년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긴 했지만 바로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한 채 입구 근처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치 발을 한 발짝 더 들여놓아도 되는지 가늠해 보는 사람처럼. 나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먼저 입을 뗐다.
“저… 실례합니다. 예약은 안 했습니다만… 오늘 꼭 좀 팔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말을 꺼내놓고 남자는 가게 안을 빠르게 둘러봤다. 벽에 걸린 안내문과 캡슐 장비, 카운터 위의 태블릿까지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이미 여러 번 알아보고 온 사람처럼 보였지만, 표정엔 망설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쩌죠. 예약 안 하신 건 그렇다 쳐도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요. 죄송하지만 다음에 와 주시겠어요?”
남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돈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나나는 잠시 남자를 바라봤다.
처질대로 처진 남자의 어깨. 그 위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게다가 한참을 걸어왔는지 그의 얼굴은 표정을 짓기조차 힘들 만큼 추위로 굳어 있었다. 나나는 손가락으로 눈썹 끝을 한번 긁어 내렸다.
“사장님!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남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늘은 까짓 거 좀 천천히 닫죠 뭐.”
나나는 일부러 조금 밝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대신 제 야근수당 포함이에요.”
남자가 그제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묘하게 겹친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