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더웠다. 숨이 막힐 듯한 더위였다.
흡사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나나는 거리에 서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면서도 자주 뒤를 돌아봤다. 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쪼그리고 앉은 자세. 늘 그랬듯 엄마를 기다리는 게 익숙한 모습이다. 이 꿈은 이미 수백 번도 더 반복됐다. 그래서 나나는 안다. 지금이 꿈이라는 걸. 그럼에도 깰 수는 없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놓친 무언가를 찾게 될까 봐.
오늘 역시 끝까지 가야 한다.
가슴이 서서히 조여들고 숨이 가빠진다.
몸은 분명 그대로 서 있는데 땅속 어딘가에서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힘겹다. 움직일수록 더 깊이 잠기는 느낌. 역시 이번에도 오차는 없었다. 나나가 서너 번쯤 뒤를 돌아봤을 때 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니.
어디로.
나나는 꿈속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몇 미터 앞에 있는 유일한 길은 양갈래 길이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 보지만 속도가 붙지 않는다. 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아이라면 훨씬 빨랐을 것이다. 사람들 허리쯤 되는 작은 키, 재빠른 몸놀림. 지안이는 스스로 걸어간 걸까. 아니면 누군가 안아서 데려간 걸까. 아니면? 나나는 길 끝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현실에서 갔던 왼쪽 길, 그리고 꿈속에서 수백 번이나 걸었던 오른쪽 길. 이번엔 그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외친다. 아이의 이름을. 평소 같았으면 “엄마” 하고 달려왔을 아이인데. 몇 번 더 불러보다가 나나는 결국 입을 다문다.
여전히 그대로 눈을 감고 있다.
덥다. 속이 바싹 말라간다.
손목에 차고 있는 밴드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현실이 끼어든다.
“휴, 라드니…”
이미 그가 어떤 말을 쏟아낼지 짐작이 갔다.
나나는 두 눈을 여전히 감은 채로 전화를 연결했다.
“라드니, 오랜만이에요.”
“나나, 지금 나나 때문에 우리 완전히 곤란해졌어.”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 일러요. 지금 새벽 아니에요?”
“일단, 나나. 아,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리고 지금 새벽 아니야. 설마 나나 아직도 그 곰팡이 핀 그 커튼 쓰고 있는 거야? 제발 좀 바꿔. 플리즈. 그거 생명을 협박한다고.”
그때 라드니의 목소리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낮게 깔린 안내 음성, 좌석 벨트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짐칸을 여닫는 소리까지.
“라드니. 지금 설마.”
“좀 있다 봐, 나나. 꼭 택시 가지고 와. 나나 차 타면 나 오래 못 사는 거 알지?”
전화가 끊긴 후에도 나나는 잠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시야에 들어온 건 짙은 와인빛의 암막커튼. 빛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시간감각이 둔해질 정도로는 빛을 차단해 주고 있었다. 나나는 커튼 쪽으로 다가갔다. 한쪽을 걷으려다 보니 커튼 뒤쪽 한편에 검게 번진 곰팡이가 제법 널찍하다. 손으로 쓱쓱 털어보지만 지워질 리 없다.
“아니 이건 또 언제 봤대.”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눈도 좋네 하는 생각이 스친다.
커튼을 양 쪽으로 끝까지 젖히자 바깥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라드니가 말한 대로 새벽은커녕 한낮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겨울 햇살만큼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화장실로 들어간 나나는 수도를 틀었다. 좁은 공간에 물소리가 금방 차올랐다.
세면대 위로 몸을 숙인 채, 손에 물을 받아 얼굴에 쓸어 올린다. 한 번, 두 번. 거울을 볼 생각도 없이 대충 닦아내듯. 화장실은 벽타일 군데군데 오래된 물때가 얇게 끼어 있었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탓인지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바로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 기름과 국물이 뒤섞인 뜨끈한 향이 좁은 화장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꼬르륵하고 나나의 배가 울렸다. 나나는 손등으로 대충 얼굴의 물기를 훔치고 화장실을 나왔다. 거울 앞에 서서 화장품 몇 가지를 집어 들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얼굴 위에 얹었다.
툭툭.
흡수가 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손에 남아있는 화장품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현관으로 향한 나나는 문 옆에 놓인 작은 금색 접시 위에서 묵직한 차 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문손잡이를 잡고 나가려던 순간, 벽에 걸린 작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나나와 딸. 그녀는 잠시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그리고 매일 하는 말처럼 다정한 한 마디를 건넸다.
“다녀올게. 이따 봐.”
그녀는 문을 열고 나왔다.
폭이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오르내릴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날 것 같은 오래된 계단. 나나는 손잡이를 짚어 가며 빠르게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나는 누군가와 거의 부딪힐 뻔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동시에 엇 소리를 내며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얼마 전 가게에 왔던, 그 남자다. 나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잠시 후 아, 하고 알아보는 기색이 나나의 얼굴에 스쳤다.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런이런, 다 쏟아질 뻔했는데 다행이네요.”
봉투는 무언가 담겨 있는 듯 묵직하게 아래로 처져 있었다.
“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직 밥 안 먹었죠. 떡국이에요.”
그는 자연스럽게 봉투를 내밀었다.
나나는 잠깐 봉투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그를 봤다.
“여기는 무슨 일로… 아니 여기를 어떻게. ”
남자는 대답 대신 나나의 손을 가볍게 잡아 봉투를 쥐여주었다.
억지스럽지 않게, 그냥 자연스럽게.
“그때 그 아이, 궁금하지 않아요?”
나나는 잠깐 멈칫했다.
아이라면.
그 표정의 작은 변화를 읽은 남자가 슬쩍 말을 이었다.
“조금은, 그렇죠?”
“그렇긴 한데, 지금은 어디 가는 길이에요.”
나나의 손에 들린 차키를 본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자신의 차가 있는 쪽으로 이끈다.
“자자, 어딘지 모르겠지만 같이 가요. 내가 데려다 줄게요.
그리고 가면서 일단 좀 먹어요. 집에 거울 없어요?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됐어요. 그리고 나 떡 별로 안 좋아해요.”
“그거 잘됐네요. 거기 사실 떡은 없어요. 만두만 있거든요.”
나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떡국이라더니.
나나의 마음을 또 한 번 읽었는지 남자는 운전석 문을 열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떡이 마침 똑 떨어졌다더라고요. 근데 괜찮아요.”
차 문을 닫으며 그가 덧붙인다.
“그 집은 원래 만두가 더 유명하거든요.”
나나는 조수석에 올라타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남자는 시동을 걸었다.
차를 모는 움직임이 익숙하고 매끄러웠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어디로 가면 되죠?”
“공항이요.”
그때 다시 한번 나나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나나가 봉투를 슬쩍 여니 따뜻한 김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뚜껑을 살짝 열자 진한 국물 냄새가 차 안에 퍼졌다. 나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뜨거운 온기가 온몸에 퍼졌다. 생각보다 더 좋았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남자가 힐끗 보며 말했다.
“다 먹고 거기 앞에 서랍 열어봐요.”
나나는 입에 담고 있던 국물을 넘기자마자 조수석 앞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에헤이. 성격이 원래 그렇게 급해요?”
서랍 속 물건들이 한 번에 끝까지 밀려 나왔다.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섞여 있었다. 구겨진 영수증 몇 장, 다 쓰다 만 펜,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부품들, 그리고 생김새도 다양한 열쇠들이 한꺼번에 엮여 있는 열쇠꾸러미까지. 서랍을 여는 힘이 조금 셌는지 그중 하나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나나는 발 사이로 떨어진 물체를 집어 올렸다. 과장되게 굴곡진 여성의 상반신이 손안에 착 감기는 라이터였다.
“어? 그게 거기 있었네? 그건 나 주고 봉투를 봐요.”
나나의 눈에 남자가 말한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를 집어 들며 남자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남자도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 안에는 몇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기억상점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나의 뒷모습.
카운터에 기대 서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들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건 꽤 멀리서 찍힌 것처럼 보였고, 어떤 건 지나치게 가까웠다.
각도도 제각각이었고 빛도 들쭉날쭉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단 하나. 모두 기억상점과 나나를 찍었다는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리고 아까 그 아이 이야기는 또 뭐고요.”
그는 시선은 정면에 둔 채 낮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위트빅로 307. 그게 그 아이 주소예요.”
나나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거기라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기억 학대 아동 보호센터. A.M.P.C(Abused Memory Protection Center).”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름은 참 그럴듯하죠. 보호 시설이라니.”
그는 짧게 웃었다.
“근데 실상은… 나나 씨도 알잖아요. 그 안에서 뭘 하는지.”
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회복 중이라고는 해도 아마 제대로 된 기억은 몇 개 없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신경 써서 애들 대하는 곳은 아니니까요.”
나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이 희생되는 이야기. 그건 새롭지 않았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연구개발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쓰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쓰이는 게 기술이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나나 씨네 가게, 얼마 못 갈 거예요.”
나나도 어차피 오래 버틸 수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작년에도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겉으로는 ‘자율적 통합’이라고 했다.
개별 운영의 한계를 보완하고,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은 늘 그럴듯했다.
효율적인 관리, 데이터 보호, 이용자 안전 강화.
듣고 있으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록과 데이터는 전부 정부로 넘어간다.
통합 관리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인다.
차창 너머로, 멀리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활주로와, 천천히 움직이는 비행기들.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남자는 슬쩍 나나의 얼굴을 살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말없이 공항 청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오가고,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스쳤다. 남자와 나나의 보폭이 미묘하게 맞지 않아 간간히 어깨가 가볍게 부딪혔다.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던 나나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여기까지면 된 것 같은데요.”
말투는 담담했지만, 더 같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아, 이거 은근히 서운한데요.”
그는 가볍게 말하더니 한걸음 다가와 다시 나란히 섰다.
“근데 어쩌죠.”
어깨를 한 번 으쓱한다.
“오늘 쉬는 날이라, 저도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나나는 그를 잠깐 바라봤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어서 말했다.
“혼자 보내기엔 좀 위험해 보여서요. 그쪽이”
나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만큼 여유 있는 날이 아니었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이 남자에게서 들을 이야깃거리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남자도 남자대로 자연스럽게 나나와 걸음을 맞췄다. 둘 사이에 말은 더 이상 오가지 않았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태준이에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뭐, 내 이름을 물어보진 않았지만요."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