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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훈 May 05. 2024

7화 : 에비스 골목에서



 에비스는 새로운 느낌보다는 원숙하고 일말의 여유가 깃들어 있는 골목들이 종종 나타난다. 서울로 치면 어떤 느낌이려나. 강북보다는 강남에 가깝다.


 “맛있냐?“

 “어, 난 맛있는데?”


 형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맛있다니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걸어서 도착한 이곳은 일본 현지인들의 찐맛집으로 미슐랭 스타도 받은 소바 전문점이었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달지 않았다.


 “야, 한국 가면 엄마가 동치미 국수 맛~있게 해줄게.“

 ”와 좋아요! 그게 더 맛있겠어 엄마.“


 엄마는 워낙 검소한 사람이고 요리를 잘하신다. 외식할 때마다 집에서 당신이 더 맛있게 할 수 있다고, 돈이 더 적게 들면서 그럴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누나는 우리들 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제일 잘 먹었다.


 “배가 안 찬다.“


 형이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나 들으라고 한 얘기임을 알 수 있었다.


 “차슈 추가할수 있어.“

 ”면이 불은것 같아.“


 양이 적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가족들은 이제 더 이상 참을수 없다는 상태였다. 가이드를 해고하고 위약금을 내놓으라고 할 판이다. 패키지여행이면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남이 아닌 가족이라 불가능했다.


 “자 그럼, 오늘 공식 일정은 여기서 끝내고 각자 자유 관광을 하시죠.”

 “야, 밖에 비온다.”


 누나는 역시 내 얘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냉정히 바라본다. 도쿄에 오면 항상 겪는 두 가지, 많이 걷는데도 살이 찌는 것과 예고 없이 비가 내리는 것이다. 전자는 짠 음식이 많아서고 후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사건이다.


 “호텔로 가야지.”

 “우산 없는데 걸어서 가시려구요?”

 “택시!“


 당연한 말씀. 도쿄의 게릴라성 호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산도 없는데 에비스에서 이케부쿠로까지 갈 순 없다. 전철을 타고 편의점의 싸구려 우산을 사서 쓰더라도 말이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엄마는 소원을 이뤘다. 택시 타고 싶어 하셨는데. 친절히도 눈앞에 와 섰다.


 “넌 안 타?”

 “난 좀 더 걸을려구. 밤에 술 마실 거잖아. 옆구리가 돼지처럼 되는 건 방지해야지.“


 나 말고 택시에 탄 세 가족은 자신들에게 합류하지 않는 나를 이해했다. 어릴 때부터 나도 고집이 남달랐었다. 가족들이 모두 앞으로 갈 때 나만 혼자 뒤로 갔다. 형도 고집이 상당했는데 그래서 우리 형제는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있다 호텔에서 보자~”

 “오키요!”


 난 사실 혼자 있는 게 미치도록 좋을 때가 있다. 걷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었다. 편의점에 들러 금세 고장나는 우산을 샀다. 엄마는 나를 당신이 29세일 때 낳으셨다. 30세가 되면 더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으시려 했기 때문에 1년만 늦었어도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랐다. 혼자 있으며 나란 놈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생각해보곤 했다.


 “새로 오픈했습니다! 밀크티가 정말 맛있는 카페 입니다~“


 골목 안을 누비고 다니다가 어느 지점에서 왔던 데를 또 왔다는게 느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전단지를 나눠주며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는 사람 앞에 멈춰섰다.


 ”비 와서 으슬으슬한 저녁 따뜻한 밀크티로 마음을 달래보세요~“


 그렇게 성심성의껏 자신의 꿈을 홍보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서 1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그루밍을 하고 있는 녀석 때문이었다.


 시부야에서 봤던 검은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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