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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훈 May 08. 2024

10화 : 이별은 지구



 “그래서 데려 왔다고?”

 “응.“

 “두 마리나?”

 “응.”

 

 둘 다 그간 길 위의 묘생을 사느라 고생했는데 새 가족을 만나 사랑받으며 살 자격이 있다.


 “어쩌려고 그래 얘가? 우리 모레 한국으로 돌아가잖아.”

 “동물 신고하고 비행기에 태우면 돼. 고양이 이동용 케이지만 사서.”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얘를 좀 봐봐 누나.”


 검냥이의 양쪽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누나 눈앞에 내밀었다.


 “전에 누나가 키웠던 막둥이랑 닮았어.”


 막둥이는 누나가 입양했던 세 번째 냥이 이름이었다.


 “막둥이랑은 다르지.“

 ”뭐가 다른데?“

 ”걔는 집에 몇 번이고 찾아와서 자기 받아 달라고 애원해서 데려왔지만, 너는 그냥 길에서 본 애를 니맘대로 데려온 거잖아. “

 ”그건 얘 아들이 다쳐서..“

 ”아들?“

 ”얘가 얘 아들이야.“


 누나는 믿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아 다 설명하자면 길어.“

 “알았어, 엄마랑 오빠 오면 같이 얘기하자.”

 “어디 가셨는데?”

 “노래방.“


 엄마는 노래방 가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데 자주 가진 못하셨다. ‘가라오케관’이라고 커다란 빨간 글씨로 쓰여있는, 도쿄나 오사카에 가면 늘 하나씩은 보이는 그곳에 가신 듯했다.


 “근데 누나가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해.”

 “일이 많아. 생명을 돌본다는 건. “

 “아버지가..”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액정을 보니 처음 보는 번호였는데 우리나라 번호가 아니었다.


 “뭐지?”

 “받아 봐.”


 누나가 내게서 검냥이를 건네받으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시부야구 구청입니다.”

 “예? 구청?”


 어쩌지, 무서워.


 “요요기 공원에서 선생님 연락처를 받았더군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서지훈이라고 합니다.”

 “외국인이신데 국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대한민국 사람인데요.”

 “공원에서 발견한 유기묘들을 보호하고 계시나요.”

 “예? 아아, 예.. 그렇긴 한데...”


 유기묘가 아니라고 거짓말할 틈이 없었다. 순간 일본 TV에서 아침마다 사건사고를 전할 때 경찰차 뒷좌석에 타고 있는 사건 피의자가 생각났다. 내가 그 꼴 되는 건가? 일본 고양이를 훔친 한국인이라고? 얼굴 다 알려지고 나라 망신 시키게 되나.


 “죄송합니다만 그 유기묘들을 저희 구청으로 데려와 주시겠습니까. 저희 구청 관할지역에서 발견된 유기동물은 저희가 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일단 경찰차 뒷좌석 신세는 면한 듯. 다행이다.


 “언제 출국하십니까?”

 “모레요.”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중으로 유기묘들을 데리고 방문해 주세요.”

 “예, 죄송합니다 늦게까지 일하시게 해서.”

 “괜찮습니다. 복지 부서를 찾아오세요.”


 그렇게 예기치 못한 통화는 끝이 났다. 일본 관청에서 전화가 온건 처음이라 마치고 나니 긴장이 한 번에 풀렸다.


 “구청에서 뭐래? 벌금 내래?“

 ”아니. 내일 얘들 데려오래.”


 검냥이를 다시 안으며 대답하는데 나 자신도 풀이 죽는 기분이 느껴졌다.


 “냐아옹-!”


 녀석은 자기 장래를 생각도 안 하는 듯이 순식간에 내 손을 빠져나갔다. 마치 액체나 펄떡 거리는 물고기가 된 것처럼.


 “왜?”

 “유기묘들이라서 함부로 데려가면 안 되나 봐. 구청에서 관리해야 하는 것 같은.”

 “그렇겠지.”


 누나는 잠시 말이 없다가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려는 녀석을 잡아채 소파 위로 이사 시켰다.


 “아까 아들이 다쳤다는게 무슨 소리야?”

 ”음식을 못 먹더라고. 막둥이처럼 구내염인가 했지.“

 ”니가 수의사냐, 어케 알어.“


 역시 냉철해 누나.


 ”것보다 우유를 먹여야 하는 상태일 수도 있지. 아직은.“

 ”엄마 냥이가 없었어. 아빠 밖에는.”

 ”그러니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애기였을 거라고. “

 ”인정. 아 그래서 그렇게 울어댄건가?“

 ”너도 어릴 때 진-짜 울보였는데.“


 그, 그랬나. 하긴. 내 어릴 적 사진은 죄다 울고 있거나 울어서 눈 주변에 눈물자욱이 보이는 얼굴밖엔 없었다. 헌데 갑자기 왜 그 얘길.


 ”내가 너 업어 키웠잖아 이것아.“


 아하, 이렇게 생색내려고.


 ”그래 알지. 고마워.“

 ”아버지는 니가 막내라고 우리 삼 남매 중에서 언제나 니가 우선이셨어.“

 ”...“

 ”아마도 저 아이를 데려온게 너도 나같은 심정이었나 본데. 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나서 허전함과 후회가 밀려오는데 무엇으로도 채워지지가 않았거든.“


 아들 녀석이 쓰레기통을 넘어 뜨렸다. 쓰레기통 안에 있던 빈 음료캔이 데굴데굴 굴렀다.


 “아버지니까 가족들에게 잘하시려고 그러신 것뿐인데 어릴 땐 내 맘을 몰라주는 게 속상했고 싫었어.“

 “쟤도 그런 아빠 같아.”


 누나의 눈을 보니 약간 촉촉해져 있었다.


 “쟤도 그랬어?”

 “어. 자식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그저 살아야 한다는 데에 집중된 가장의 모습.”

 “근데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 지나고보니까.“


 평소보다 진지한 누나의 목소리. 난 듣기만 했다. 생활력 없었던 누나의 전 남편을 떠올리며.


 ”돌아가시기 전엔 왜 몰랐는지.“

 ”이제 아니까 괜찮아.“

 ”아버지를 매일 생각하면, 그래서 기억하면 별다른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와 함께 있는거야.“

 ”사실 어제부터 아버지도 도쿄에 같이 와 계시다고 생각했었어.“


 누나는 옛 기억에 더 빠져드는 표정이었다.


 ”아버지랑 엄마랑 도쿄 처음 왔을 때 있잖아. 식당에서 일본어로 주문하는 게 어려워서 백화점 문 닫을 시간 즈음에, 그 왜 백화점 식품매장, 거길 갔었어.“

 ”그래 그래, 아버지가 참치회 좋아하신다고 갔었지. 전에 얘기했던 것 같아.”

 ”그때 세일가로 산 백화점 참치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 후로도 그날밤 누나의 추억담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노래방에서 엄마와 형이 돌아오고 나서도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에 대한 추억이 마음속에서 꺼내보니 너무 많았다. 어떤 존재와의 이별이라는 건 적어도 그 존재를 잊지 않는 한 없는 것. 그걸 알려준 게 이번 시부야 가족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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