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발끝으로 삶을 밟았다

by 유나


버스로 20분 거리인 헬스장은 참 멀게 느껴졌다. 가까운 헬스장에 갈 수도 있었지만, 여성 전용이라는 점과 PT를 전문으로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버스를 탔다. 참으로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두근거렸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교통카드가 안 된다거나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다. 버스가 오기 두 정거장 전부터 교통카드를 찍을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교통카드가 찍혔다. 나는 안도하며 창가 쪽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이번에는 나도 그랬다. 나도 사회에 소속된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버스에 내린 나는 곧장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곧 대표님이 오셨고 나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대표님이 남자분이시라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여자 트레이너분으로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대표님은 상담 동안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주셨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셔서 믿음이 갔다. 나는 바프를 목적으로 PT에 등록했다. 굳이 바프까지 하려고 한 이유는 그러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았고, 더 늦어지기 전에 건강한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30분도 안 되는 상담 후 나는 진이 빠진 채 나왔다.

상담 선생님과 가족을 제외한 처음 보는 누군가, 그것도 이성과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걸어서 왔다. 버스 타는 것보다 걷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틀 후 담당 피티샘과 만나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굉장히 쾌활하시고 긍정적인 분이셨다. 나의 부정적인 기운들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분. 내가 일부러 울상을 짓거나 걱정이나 한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주변에는 나의 이런 점을 받아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의 강도는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세다고 생각하는 강도 이상이어서 조금 벅찼다.

‘이거 이래도 괜찮나? 무리하는 거 아닌가?’

불안한 생각에 주춤거릴 때마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정말 괜찮았다. 하루 이틀 정도 약간의 근육통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괜찮다고 말하는 선생님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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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개월간 지속한 식단(아침·점심·저녁)

그렇게 하루하루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 그런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평소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강도를 하루, 일주일, 한 달 내내 버텼다.

‘잘했어, 힘든데도 끝까지 해냈어.’

정말 오랜만에 내 칭찬했다. 10년 만의 칭찬은 강력했다. 뭐든 다 할 수 있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졌다. 매일 자신을 방 안에 가둔 내 보잘것없는 인생도 평범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SE-0e2e65de-c742-4d9b-be82-fbfb048587de.jpg 처음 잰 인바디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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