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는 울었고, 몸으로는 버텼다

by 유나

막힌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주로 컴퓨터나 핸드폰을 온종일 했던 것 같다. 웹소설을 접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주로 로맨스 판타지를 읽으며 환생한 황녀가 되기도, 인기 많은 여학생이 되기도 했다. (현실에서 도망쳐 소설 속 인물이 되려 했던 것 같다) 안 그런 소설도 있었지만, 몇몇 소설들은 내 바람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아 답답했다.


‘내가 쓴다면 더 잘 쓸 텐데.’


도전 안 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오만함으로 난 몇 줄 쓰기 시작했다. 보기와 달리 이야기를 쓰는 일은 엄청난 힘이 들었다. 인물들의 생각, 느낌, 바라는 점 등을 생각해야만 했고, 다른 인물과의 갈등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렇지만 인물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주변 상황까지 생각하는 전체적인 눈이 커졌다. (이때 내가 설정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기 고민에 몰입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는데, 나의 내면이 반영된 것 같다)


한 인물을 깊이 생각하는 건 정말 재밌었다. 내 일부분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어 내가 원하는 세계를 그릴 수 있었고, 내 마음대로 인물들을 주무를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 내 자아가 반영된 인물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적도 거의 없고, 글쓰기도 배워보지 못한 터라 구성이 엉망이었다. 결정적으로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완벽한 작품은 없듯이 내 글도 충분히 다듬고 시간을 들인다면 개선될 수 있을 테지만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창과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나는 욕심이 있어 심리학도 복수 전공하기로 했다. 사람의 심리를 알면 깊이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배울수록 어려웠다 글을 쓰고 엎고 새로 쓰고 엎으며 난 몇 개의 작품을 잃고, 완성의 기쁨을 놓쳤을까?


나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 혹은 오만할지도. 난 한 번에 멋진 작품을 쓰길 원하고 그게 안 되면 새로 시작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자 스멀스멀 불안감이 기어 올라왔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졸업해도 넌 돈을 벌 수 없을 거야.’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거라는 무력감은 슬픈 감정과 억울함을 데려왔다.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내주신 PT 비용,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피티샘, 날 응원해주시는 상담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갔다. 내가 울상을 지었는지 트레이너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셔서일까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운동하니까 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무거운 것도 들어 올리는 데 뭐든 못할까.’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우울해지면 괜찮아지는데, 이틀은 걸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눈에 보이는 성장을 원했던 것 같다. 글쓰기는 티가 나지 않지만, 운동은 바로바로 티가 났다. 일단 운동은 하고 있다는 티를 낸다. 근육의 뻐근함과 가쁜 호흡, 떨어지는 땀방울들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탄탄해지는 몸은 내가 노력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반면, 글 쓰는 건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단점만 눈에 보인다. 그렇지만 공을 들여 고칠수록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어간다. 나는 시간이 걸리는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이 꼭 필요함을 깨달았다. 글쓰기로 지친 마음을 운동이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걸 포기할 뻔한 이 날, 놀랍게도 다시 펜을 잡았다.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펜을 보며 다시금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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