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88년생의 인생

by 여우언니

인생을 한 번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서전을 써야겠다고 맨 처음 시도했던 건 대학교 재학시절이다. 왜인지 모르게 20대 초반에 나는 나의 10대 시절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었다. 누가 궁금해한다고 그걸 쓰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내일모레 마흔을 앞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인생을 정리해 보고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 책은 나의 20대와 30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었고 평범하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인생이다. 대단할 것도 없고 보태거나 덜 것도 없는 그저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최대한 담백하게 써 내려가본다.


인생에 관련된 글이라 주인공에 대해 잠시 소개를 하자면, 당신 옆에 한 명쯤 있을 만한 그런 사람이다. 굳이 특징을 꼽자면 외형은 여성으로 남들보다 조금 하얀 피부에 마른 체형이다. 성격은 오지랖이 넓어서, 어린 시절부터 '맞장구를 잘 친다', '아줌마 같다(비하 아닙니다)',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거 같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컸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긍정적이다. 그리고 소심한 관종이라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랐으면 좋겠는데, 또 너무 무관심하진 않고 약간의 관심을 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국립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재수생 시절을 지나 4년제 대학교에 진학했다. 2000년대는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하는 분위기라 재수까지 했다. 돈 많이 들었다. 그런데 재수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본인기준).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1학년때는 삼수를 꿈꾸고, 2학년때는 편입을 시도했다. 3학년 때 이공계에서 인문계로 전과를 했고,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노량진으로 갔다. 공무원시험에 실패 후 복학, 취업준비를 했지만 결국 취업을 하지 못한 채로 졸업했고, 다시 노량진학원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통학하며 공시생 신분으로 살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엄마와 함께. 생각보다 다친 부위는 심각했고, 엄마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상에 누워서 눈만 뜨고 계신다. 딸은 5주간 입원을 하고 퇴원 후 바로 엄마 간병을 하면서 20대를 보낸다. 간병생활 중에 틈틈이 공무원 시험 준비, 토익공부를 병행했다. 잠시 공무원 시험 영어과목이 토익으로 대체된다는 풍문이 돌 때에도, 선택과목에 고등학교 사회, 과학, 수학이 추가될 때도 계속 준비했다. 그렇게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지고 결국 취업을 준비한다. 반포기 상태로 준비하던, 우울증과 자기 비하가 심해져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물론 현재도 주기적으로 우울증과 무기력증, 조증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좀 더 적자면, 직장은 협회라는 곳에서 잠시 일했고, 의료계열 자격증을 취득해 대학병원, 동네 의원에 다녔다. 현재는 공인중개사 시험공부(인터넷강의 평생회원), 사회복지학과 복수전공 과정을 진행 중이다(실습만 남음). 종종 자격증 관련 일로 병원이나 기업을 다니는데 코로나가 시작될 때부터 주식, 펀드, ETF, 비트코인에 월급을 투자했고 그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하고 사는 중이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난 기간에는 새로운 뭔가를 배우는 삶을 산다. 지금은 미용 쪽에 관심을 가지고 헤어를 배우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여우언니'라는 필명으로 2015년부터 연애와 사랑, 이별에 관한 글을 10년간 써왔고, 크몽에서 연애상담도 하고, 스푼라디오에서 개인채널 라디오 방송도 했었다. 인스타, 유튜브를 해보겠다고 기웃거렸으며, 얼마 전 카카오 브런치북에서 '결혼이 하고 싶니? 비혼이 나을까?'라는 책을 첫 출간한 상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아빠와 오빠(읽을지 모르겠지만)는 내가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다. 나는 평소에 말하는 걸 좋아하고,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지만, 가족에게는 오히려 힘든 얘기를 못했다. 엄마가 아파서 가족 모두 힘든 상황인데 굳이 엄마 외의 사람이 '아프다'라고, '힘들다'라고 말하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라 느껴져서 더 그랬다. 서로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우울증이 생겼다고 '나 약 먹는다'라고, '나 상담받는다'라고. 평생 누워계셔야 하는 전신마비 병명을 지닌 뇌병변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어서 나머지 가족은 아프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엄마가 크게 아파서 누워계신데, 남은 가족까지 아프면 정말 무너져 내릴 거 같아서 그래서 우리 가족은 절대 아플 수 없었다.


20대 중반, 인생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고, 바꾸고 싶은 그날, 하루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은 그날,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의 기억을 글로 옮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일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나는 아파서 글을 쓰지 못했다. 이 글은 나를 위한 글일 수도 있고 혹여나 나처럼 평범하게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위로의 글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삶의 끝자락에서 혹여나 내 글을 읽는다면 그렇다면 조금 더 같이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힘들 때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다. 우울하지만 우울하지 않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눈물이 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있을 만큼만 딱 그 정도로만 글을 쓰고 싶었다.


제가 책에서 위로를 받았듯이 누군가도 제 책을 읽고 위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씁니다. 다소 어둡고 우울하고 자조적인 글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