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우울증 생활(2)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

by 여우언니

1. 처음 우울 증상이 나타났을 때 외면하지 말걸.


2. 나는 생각보다 더 나약한 인간이고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걸 인정할걸.


3. 신은 감당가능한 시련만 주신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인생은 불공평하다.


4. 우리 가족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은 하되 자책하지 말걸.


5. 교통사고는 네 잘못이 아니야. 우연한 사고였어.


6. 울어도 되는데 너무 많이는 울지 말자. 울다 지쳐 잠들 만큼 그만큼은 울지 말자.

앞으로도 계속 울 거라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한 엄마가 꿈에 나오면 울 거니까, 엄마의 아픔을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10년 전부터 그 어느 순간에도 너는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단다.


7. 사람들 말에 상처받지 않게, 건강한 정신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을 것.


아직도 제가 잊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너희 엄마는 저기(중환자실)에 있는데, 너는 왜 여기(일반병실)에 있니?'


그 말에 나쁜 뜻이 있진 않았겠지만, '왜 둘이 같이 사고가 났는데, 한 사람만 저렇게 심하게 다쳤어?'라는 뜻으로 속상해서 하신 말이셨겠지만, 저는 그 말에 여전히 마음이 아파요. 분명 둘이 같이 사고가 났는데, 왜 엄마만 저렇게 크게 다친 거냐고.. 말하시는 거 같아서... 그래서 한동안 죄책감에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가 저 대신 더 다친 거 같아서,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눈물로 하루를 지내는데, 죄책감까지 더해져서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너라도 괜찮아서 다행이다. 둘 다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으면 어쩔뻔했니?'


정말 걱정해서 해주신 말이셨겠지만 그 당시 제정신이 아닌 저에게는 정말 어떻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상처받는 말들이었어요.

원래도 말 한마디에 굉장히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이라 저렇게 말을 하시면 저는 상처를 받더라고요.


저는 항상 말은 조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인데, 사고 이후로 위로의 말도 조심히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후에 더 자세히 사고에 대해 써보려고 노력하겠지만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도 저의 아픔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담담하게 써 내려가 볼게요.


우울증에 관해 꼭 알아야 하는 건 내가 나의 가족을 가만히 살펴보고(유전적인지, 선천적인지), 우울증 환자 본인도 스스로를 돌이켜보면서(후천적인지), 우울이 온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조금 괜찮아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괜찮아졌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들은 무엇인지, 그걸 이해하고 나서 우울증을 좀 더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나 역시 우울증 10년 차지만 여전히 서툴고 어렵고 힘들고 그래. 다만 예전처럼 충동적으로 죽고 싶진 않아. 요즘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거든. 금주를 했다고 봐도 좋아. 술을 안 마시니까 좀 낫더라. 술은 생각보다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들어. 우울증 환자에게 용기는 무서운 거거든.


'술 먹지 마.'


운동해서 체력을 길러. 몸의 체력이 너그러워져야 마음의 체력도 좋아지더라. 정신병원에 간다고 바로 확 좋아지지도 심지어 나아지지도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사람마다 병이 낫거나 완화되는 건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나는 지금 이 시기(우울증 완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좀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도대체 언제 우울이 오고 우울이 사라지는지 깨닫기까지 십 년이 걸리더라. 패턴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반복되는데, 우울이 서서히 찾아오는 시기는 대부분 내가 불안한 마음이 들 때였어. 진짜 아이러니한 건 우울증이 극복됐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고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조금씩 뭔가 불안감이 싹트더니 하려던 일이 생각처럼 잘 안되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바로 우울증이 극도로 심해지더니 아무것도 못하겠고 숨이 막히고 그러더라.


사람들은 그걸 번아웃이라고 하던데, 어찌 보면 우울증에 한 종류인 거 같아. 나는 우울이 오면 그걸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어. 그래서 단순히 관련 책과 영상을 보고 나면 괜찮아지는 건 줄 알았어. 하지만 우울이 나아지려면 뭐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아무것도 못할 때는 그저 누워서 쉬어도 돼.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때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불안해져서 더 우울해지니까, 그냥 멍하니 있어도 돼.


단지 아주 조금이라도 '뭔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그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이불을 개고,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안일을 하나씩 하는 거야, 하루에 하나라도.

그리고 밖에 나가기 힘들면 하루는 문밖까지, 하루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그다음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생활 반경을 늘려가는 거야.


우울증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중에 나는 운동이 가장 좋았어. 억지로라도 해야 해서 아파트 커뮤니티센터를 등록했어. 정말 엘리베이터만 타고 지하주차장만 살짝 지나면 되는 곳을 갔어. 도보 5분, 못 가는 날도 많고 진짜 하루에 목표가 요가가기였어. 요가를 하고 나면 용기가 생겨서 아파트 단지 내 산책도 하고 그게 지속되면 점점 사람들이 눈에 보여. 그렇게 아주 조금씩 나아지면 돼. 그거면 충분해.


서른쯤에 처음 수영을 등록하고 싶은데 잘 다닐 수 있을지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가 같이 가줬어. 내가 수영장까지 혼자 가질 못하니까, 같이 가서 수영장도 함께 구경하고 데스크에 가서 등록하라고 해줬어. 그렇게 시작한 수영 덕분에 우울증이 많이 나아지고 심지어 체력도 좋아졌어. 적당히 건강하게 몸무게도 늘고 자신감도 생겼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고 그걸 하는 과정이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됐어. 그중에서 나에겐 운전과 수영, 이게 가장 좋았고 영어회화는 아직 미숙해서 계속 배우는 중이야.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원재훈저자-


내가 우울할 때는 너무 듣기 싫은 말인데, 정신이 괜찮을 때는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라, 남의 아픔으로 위로받고 싶지 않지만, 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위안을 삼더라.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전히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힘든 상황을 얘기해 줘서 고마워.

아, 그 의료수술을 여러 번 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무슨 얘기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