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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류와 코스모스

by 더블윤
허블 딥 필드(Hubble Deep Field) / NASA

태초에, 우주는 질서였다.


약 150억년 전, 장차 모든것을 만들어낼 한점이 이 세계의 구성을 위한 위대한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 점은 '무(無)'이자 '모든것'이었다.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 고요속에, 오직 가능성의 바다만이 잠잠히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찰나, 무한히 작은 점에서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빅뱅(Big Bang)."
그 엄청난 폭발로 우주는 탄생했고, 혼돈 속에서도 질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주 초기, 빛과 어둠이 아직 정의 되지 않았던 그 순수의 시대에, 수소와 헬륨이라는 가장 단순한 원소들이 이 우주 곳곳에 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우주의 한 구석에서 밀도와 온도가 미세하게 높아진 영역이 생겼고, 그곳에서 중력은 이 원소들을 조금씩 끌어모았다. 수소 구름은 점점 더 조여들며 중심부의 압력이 상승했다. 그 압력은 결국 온도를 높였고, 마침내 수소 원자핵들이 서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며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빛의 시작, 별의 탄생이다.
빛을 모르던 우주 속에 첫 번째 별이 점등되던 순간이었다. 이 새로운 별은 자신을 태운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며 빛을 내기 시작했고, 마치 생명이 처음 심장을 뛰게 하는 것처럼, 우주는 생명의 리듬을 품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었다. 어떤 별은 조용히 소멸했지만, 어떤 별은 초신성 폭발로 찬란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별의 죽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재료들을 만들어냈다. 그 폭발 속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졌고, 그것들이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이 원소들은 또 다른 별과 행성의 재료가 되었고, 결국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의 뿌리가 되었다. 그러니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별 주위에는 형성되지 못한 가스와 먼지들이 남았다. 이 물질들은 중력과 원반의 회전에 의해 납작한 형태의 원시 행성계 원반을 이루었고, 이 안에서 미세한 입자들이 서로 뭉치며 점점 더 큰 덩어리로 성장했다. 그렇게 원시 행성이 생겨났고, 수많은 충돌과 융합을 거쳐 오늘날의 행성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중 어떤 행성은 거대한 가스로 이루어졌고, 어떤 행성은 단단한 암석과 금속으로 구성되었다.

넘실거리며 확장하는 혼돈(Chaos)속에서 별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계(System)를 형성했고, 은하라는 별의 도시를 이룩했다.
은하와 별, 행성은 중력이라는 신비한 힘에 매여 얽히고 설켜 거대한 우주를 이루었다. 끝없는 혼돈처럼 보였던 우주 속에서 질서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갔다.
이것이 우리가 이 우주를 질서와 조화를 상징하는 코스모스(Cosmos)라 부르는 이유이다. 은하가 형성되고, 별들이 태어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끌고 밀어내는 이 우주는 숨결을 갖게 되었고, 그 숨결 속에는 질서와 조화, 그리고 어느것 하나 해치지 않는 공존이 살아있었다.

우리 태양계도 역시 빛을 발하며 행성들을 끌어당기고, 행성들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공전하며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궤도에 위치한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절묘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온도, 적절한 대기 조성, 자기장으로 보호되는 환경은 이 작은 행성 위에 생명을 틔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작은 행성 위, 거칠고 험했던 원시바다속에서, 코스모스에서 시작된 원소들의 집합체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또 다른 한 점이되어 위대한 도약을 준비하고있었다.

약 38억 년 전, 화학물질들이 원시 바다의 깊은 곳에서 고온의 열수구, 또는 번개와 자외선 같은 외부 에너지를 통해 서로 반응하며 복잡한 유기분자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유기분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원시 세포가 출현했다. 그들은 미세하되 강인했고, 원시 지구의 극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며 진화를 이어갔다. 그 이름이 바로 생명이었다.

이 원시 세포들은 서로 다르게 분화하며 점점 복잡한 구조를 갖추어 갔다. 수십억 년의 시간 속에서, 어떤 세포는 다른 세포를 내부에 품어 공생 관계를 이루었다. 이는 다세포 생물의 기틀을 만들었고, 생명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해파리처럼 부유하는 생명에서부터,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조류, 그리고 마침내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연의 위대한 실험실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자신들을 탄생시킨 코스모스를 바라볼 줄 아는 생명체가 등장하게된다.

인간. 인류. 사람.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어느 사바나에서, 직립보행을 시작한 호미닌(hominin)이 등장했다. 두 손은 자유로워졌고, 도구를 다루기 시작했으며, 뇌는 점점 커졌다. 불을 다루고 언어를 사용하며, 생존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하려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그 존재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다른 생명들처럼 생존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최초로 스스로를 의식하고, 코스모스를 올려다보며 그것을 이해하고자 했다. 땅을 딛고 일어서서 하늘을 바라본 순간, 인간은 코스모스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창이 되었다.

다른 생명들이 적응하며 살아갔다면, 인간은 이해하려 했다. 불을 붙이고, 도구를 만들고, 언어를 나누며 인간의 뇌는 단지 생존을 넘어, 의미와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품었다.
그것이 곧 문명의 시작이었다.
인류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렸고,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별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처음 인간은 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삶을 살았다. 하늘의 별자리를 기록하며 농사의 때를 알았고, 별빛을 따라 항해를 시작했다. 별을 이해하고자 했던 최초의 욕망은 코스모스를 닮으려는 열망이었다. 신화를 통해 우주를 설명했고,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도시와 신전을 건설했다. 인간의 초기 문명은 마치 코스모스를 지상에 재현한 듯했다.
초기 문명은 대지의 숨결과 조화롭게 호흡했다.
강의 범람에 따라 씨를 뿌리고, 별자리의 흐름에 따라 시간을 세며, 인류는 자연의 거대한 율동 안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경계를 넘고자 하는 충동을 품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닮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려 했다. 문명은 팽창했고, 자연과의 균형을 잃었다. 기술의 진보는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간을 점점 코스모스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인류는 점점 더 자신들의 목소리만 듣는 존재가 되었으며, 자연과 우주의 소리에 귀를 닫았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은 인간 스스로를 위협하기도 했다. 인간은 어느새 지구 자체를 흔들 만큼 강력해졌고, 코스모스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잃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힘과 한계를 다시금 깨닫고, 우주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한다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위대한 존재가 되었으며, 왜 그 위대함이 결국 스스로를 위협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다시 코스모스를 향한 여정으로 이끈다. 현대 과학은 다시금 코스모스를 탐색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우주의 탄생을 다시 묻고, 우주탐사를 통해 지구 너머에 우리의 미래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탐구는 단지 우주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코스모스를 꿈꾼다는 것은 잊혀진 별빛을 기억하고, 그 빛 아래에서 인간의 존재와 책임을 다시 묻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기억과 성찰을 통해 우주와의 진정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다시, 코스모스를 꿈꾸는 이유이다.

인류는 어느순간 코스모스를 잊었고, 코스모스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인류와 코스모스는 어떻게 이어져 있었나?
우리가 코스모스를 다시 바라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찾아 진화의 첫걸음을 내딛어보려 한다.
인류 문명의 성장과 인간 존재의 진화를 되돌아보며, 그 진화가 코스모스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를 되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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