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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년기의 문명, 조화를 꿈꾸다

by 더블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풍부함이 땅에 가득하였나이다”

시편 104:24



문명은 단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집단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광활한 질서의 상징인 코스모스를 닮은 사회였다. 자연의 순환처럼 이어지고, 강물처럼 흐르며 서로 얽히고 기대는 공동체. 인류는 문명의 첫걸음부터 조화로움을 꿈꾸었다.


농업이 인간의 삶을 안정시키자, 이제 인간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스릴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역할과 책임의 분배, 질서와 윤리의 수립이 시작되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조화에서 배운 생존의 지혜였다.




고대 바빌로니아는 문명의 이러한 고민에 가장 먼저 체계적인 응답을 시도한 문명 중 하나였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론 왕조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을 통일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형성했다. 이 왕조의 기반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와 정교한 수리 체계, 그리고 통일된 행정 구조였다. 그러나 다양한 도시 국가들과 부족이 뒤섞인 이 지역에서, 단일한 규범과 질서를 세우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였다.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이었다.

함무라비는 바빌론 제6왕조의 여섯 번째 왕으로, 정치적·군사적 역량과 행정력에서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한 후, 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과 규범을 활용했다. '신이 부여한 법'이라는 권위 아래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은, 단지 범죄와 처벌을 규정한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계급, 재산, 성별, 가족, 상거래, 고용 관계 등 공동체 전반의 질서를 구조화하려는 시도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요약되는 복수 원칙은 단순한 응보가 아니라, 형벌의 비례성과 균형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각 개인은 자신의 계층과 책임 안에서 규범을 지켜야 했고, 사회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법전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을 태양신 샤마시로부터 법을 부여받은 존재로 묘사하며, ‘강자를 제어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법의 존재 이유임을 선포한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 사회가 법을 단지 정치적 도구로 보지 않고,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도덕적 구조’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이 법전은 신이 부여한 질서로서의 법을 선포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했다. 사회는 하늘의 운행처럼 정돈되어야 한다는 이상이 법과 제도로 구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어떻게 하늘에서 질서와 조화를 보았을까?
그들은 왜 하늘의 구조를 사회의 모범으로 삼았을까?
왜 이들은 법을 코스모스의 질서로 이해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바라본 자연의 모습에 있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무질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질서 그 자체였다. 태양은 매일 정해진 길을 따라 떠오르고, 달은 어김없이 위상을 바꾸며 밤을 비췄다. 별자리는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를 지켰고, 계절은 순환하며 대지를 적셨다.

인류에게 태양은 생명의 원천이었다. 눈부시게 떠올라 온 대지를 밝히고, 생명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며 하루를 여는 존재. 태양은 절대적인 권위자이자, 동시에 은혜를 베푸는 존재였다. 그것은 곧 이상적인 통치자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고대의 왕들은 스스로를 태양에 비유했고, 권위를 주장할 뿐 아니라 은혜로운 통치를 이상으로 여겼다. 바빌론의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태양신 샤마시의 대리자로서, 하늘의 법을 지상에 구현하는 자로 자처했다.

달은 또 다른 방식의 권위였다. 태양이 물러난 밤에도 달은 어둠을 비추며 생명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그 위상 변화는 시(時)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농경과 제례의 순환을 알려주는 달력이 되었다. 달은 변하면서도 정직했고, 고요하면서도 생명을 감싸안는 존재였다. 이 역시 공동체 속 질서와 역할을 상징하는 은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별들은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존재였다. 하늘에 고정된 듯 제자리를 지키며, 예측 가능하게 운행되었다. 어떤 별도 다른 별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고, 그 정교한 조화는 인간에게 신비로움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었다. 바빌로니아의 학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러한 별들의 움직임 속에서 코스모스의 질서를 읽어냈고, 그 질서를 본떠 문명의 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어쩌면 당시 바빌로니아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의 모든 별은 문명의 신민이며, 각자 자리를 지키고 침범하지 않는다. 이 질서와 조화 속에서 코스모스는 유지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명도 그러해야 한다. 각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 조화 안에서 사회는 번영할 수 있다."

결국 코스모스는 단지 시간의 근거가 아니라, 사회의 모범이었고, 법의 이상이었다.
법은 하늘처럼 엄정하되, 태양처럼 은혜롭고, 달처럼 주기적이며, 별처럼 정위적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함무라비 법전은 단지 형벌 규정이 아닌, 코스모스를 본뜬 ‘이상 사회의 모형’이었다. 그 안에는 권력의 절대성과 책임, 구성원의 질서와 역할, 균형과 회복의 원칙이 담겨 있었다.


문명은 그렇게, 코스모스의 모방으로서 시작되었다. 법은 인간 사이의 규칙이 아니라, 코스모스의 반영이었다. 하늘이 질서와 주기를 따라 움직이듯, 인간 사회도 그러해야 한다는 믿음. 그것은 두려움 속에서 질서를 갈망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연을 닮고자 했던 인간의 가장 오래된 꿈이기도 했다.




문명이 단지 법과 제도로만 조화를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문명은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 속에서 삶의 윤리를 읽어내며, 자신들의 세계를 설계했다.

초기 마야 문명이 그랬다.

그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세계를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았다. 코스모스의 순환은 마야인들에게 시간의 흐름이자 사회의 원칙이었고, 인간의 삶은 그 순환에 응답하는 하나의 주기로 이해되었다. 왕은 지배자가 아닌 우주의 순환에 봉사하는 존재였다. 즉위식과 제례는 금성의 공전 주기에 맞춰 치러졌고, 왕은 별이 다시 돌아오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존재여야 했다.

마야 사회에는 계층이 있었지만, 그 통치는 하늘의 법칙에서 정당성을 얻었고, 왕 역시 그 법칙 앞에서는 겸허해야 했다. 스스로를 “하늘 괴수의 후예”로 여긴 왕들은 코스모스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바치는 의례에도 참여했다. 그들에게 통치란, 자신을 우주의 희생으로 삼아 조화를 이루는 일이었다.

그들의 도시는 하늘의 구조를 본떠 설계되었고, 신전과 관측소, 제사의 시기는 모두 천문 주기를 따랐다. 특히 춘분과 추분에 태양빛이 계단을 따라 뱀처럼 내려오는 쿠쿨칸 피라미드는, 자연과 인간, 정치와 종교가 하나의 질서 안에 있음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적 선언이었다.


마야 문명은 완벽한 평등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코스모스의 법칙을 통해 지향한 세계는 분명 질서와 조화, 그리고 윤리적 통치였다.

그들에게 문명이란 별의 법칙을 본받아 세운 삶의 형태였으며, 통치는 곧 하늘의 침묵에 응답하는 하나의 책임이었다.




그와 유사하게 다른 문명들도 그들만의 조화를 찾아 건설해 나갔다.
미노아 문명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의례에 참여하고 춤과 축제를 나누던 유연한 사회 구조로, 위계보다는 공동체적 조화를 우선시했다.
인더스 문명은 계층 간 갈등의 흔적 없이 질서 정연한 도시계획과 위생 시스템을 구축해 평등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 문명으로 평가받는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천명’ 사상이 통치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예(禮)’로 구현하려 했다.
이집트 문명 또한 ‘마아트’를 중심 가치로 삼아,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우주의 법칙에 조화롭게 일치시키려는 사법과 종교 체계를 발전시켰다.


초기 문명의 사회는 물처럼 유연했고, 불불균형보다 균형 추구했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사회란, 자연처럼 순환하고 흐르며, 모든 존재가 제자리를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세계였다.

결국 유년기의 초기 문명이 추구한 사회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조화'였다. 인간과 인간의 조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인간과 우주와의 조화를 꿈꿨다.
이러한 문명들의 사유와 실천은 단지 생존을 위한 사회 조직이 아니라, 더 나은 삶과 세계를 위한 형식이었다. 그들은 코스모스를 이상적인 세계로 바라보았고, 그 질서와 조화를 닮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 온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들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이상향의 가능성을 실현하려 했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중국 요순시대의 성군 정치, 인도 아리아인의 리타(자연 질서) 개념, 샤머니즘과 원주민 공동체의 순환적 세계관은 모두, 각 문명의 이상향을 향한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사상 아래에서 발전해 나갔다.
이 모두는 자연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반영하려는 시도였으며, 그 안에서 조화, 평등, 책임, 순환이라는 가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강조되었다.

그들은 코스모스를 이상적인 세계로 바라보았고,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년기의 문명은 코스모스에 속한 그 자연을 이해하고 본받으며, 그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들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시간’이란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을 통해 ‘질서’를 세웠으며,
서로의 필요를 인식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며 ‘조화’를 찾았다.


그것은 유년기의 문명,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코스모스를 닮고자 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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