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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r2

# 54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https://brunch.co.kr/@6121f01a108340c/79




Girl's


비트라 링크(Vitra Link).
그것은 응급처치자가 자신의 신경생명액, 즉 척수액의 일부를 추출해 생체 재생매개체인 ‘비트라 용액’과 결합시킨 뒤 부상자의 순환계에 주입함으로써 손상된 조직과 장기의 재생을 유도하는, 네리안 특유의 응급 생명회복 기술이다.
네리안의 신경계는 고밀도의 바이오에너지와 탁월한 정보 저장 효율을 갖고 있고, 척수액에는 미세한 생체정보 입자들이 존재하며, 이 입자들은 개체의 ‘세포 복구 정보’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경생명액을 추출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명 정보, 유전자 코드, 그리고 생체 패턴을 떼어내는 행위다.

이 생명정보가 비트라 용액과 결합하면, 용액은 급격한 세포 재생과 분열을 일으키는 고활성 혼합체로 변한다. 그 혼합물 안에는 응급처치자의 생명 정보가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심장에 주입되면 혈류를 따라 그 정보가 부상자의 전신으로 전달된다.
이때 부상자의 세포는 응급처치자의 생체정보를 ‘모델’로 삼아 자신의 복원 경로를 새롭게 설정한다. 그리고 그 명령은 지체 없이 실행된다.
그 결과, 심각한 장기 손상과 같은 상처조차도 짧은 시간 안에 복구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기술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존재한다. 재생된 조직은 처치자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이어받기 때문에, 부상자의 신체 안에는 처치자의 생명 서명이 새겨진 새로운 세포들이 공존하게 된다.
육체는 그것을 스스로의 일부로 인식하지만, 세포 구조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부상자는 회복 후에도 미묘한 이질감과 불편함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 기술이 ‘링커(Linker)’라 불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비트라 링크가 발동되면, 처치자와 부상자의 사이에 양자 수준의 정보 교류가 발생한다.
그들은 일정 시간 동안 ‘생명 회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맥박, 심박, 통증, 감각.
그 모든 생리 신호가 서로에게 전이된다. 쉽게 말하면, 한쪽이 고통을 느끼면, 다른 한쪽 또한 그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이다.

현재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이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노라의 생명 기능이 나의 체계와 연결된다는 뜻이며, 노라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나는 그의 고통과 절박한 생명 신호를, 있는 그대로, 깨어 있는 의식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이 주사기로 나의 일부를 꺼내, 그에게 건널 다리를 만들 것이다.
그 다리를 통해 그의 생명이 다시 세상으로, 그리고 내게로 돌아오길 바랐다.




한 손으로 척추뼈의 능선을 더듬었다. 차갑고 단단한 돌기 사이를 따라 손끝이 미끄러졌다. 다른 손에 쥔 주사바늘이 은빛으로 번쩍였다. 날카로운 바늘 끝을 살짝 허리에 대보자, 피부가 얇게 찢어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스스로를 달래듯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바늘을 찔러 넣으려는 찰나, 딜런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눈빛엔 불안과 결심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그가 낮게 말했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완전히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하기엔, 너무 위험해요...”

나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사기를 그의 손에 건넸다.

“서둘러 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나는 바닥에 옆으로 몸을 돌리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등이 완전히 드러난 채, 긴장으로 근육이 굳어갔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기체 안의 공기가 점점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

딜런은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이 짚었던 부위를 찾아, 바늘을 가져다 댔다.
“여기… 맞나요?”
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네. 제가 신호할 때까지… 깊게 찔러 넣어주세요.”

잠시의 정적. 그리고 곧, 바늘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숨이 목구멍에 걸렸다. 통증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번졌다. 마치 뜨거운 쇳조각이 살 속으로 밀려드는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억눌렀다.
바늘이 더 깊숙이 파고들자, 허리를 타고 전류가 도는 듯한 찌릿한 감각이 뇌를 꿰뚫었다. 척추의 신경다발이 바늘의 차가운 감촉을 그대로 전해왔다. 근육이 스스로 수축하며 몸이 경직됐다.

“잠깐… 거긴 신경이 있어요. 각도를 조금만 조정해요…”
나는 고통으로 오므라드는 입술을 열고 힘겹게 말했다.

딜런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번개처럼 빠른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번졌다.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경련을 일으켰다. 팔과 다리가 저릿하게 떨리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됐어요… 지금이에요… 추출을 시작해요.”

내 말이 끝나자, 딜런이 주사기의 플런저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실린더 속으로 나의 일부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졌다. 그 느낌이 손끝과 심장을 동시에 죄어왔다. 정신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듯했지만 나는 끝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를, 그의 미약한 심장 박동을, 내 귓가로 전해지는 그 생명의 진동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라의 미소 짓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그 미소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야...



실린더가 가득 차자, 등 뒤로 빠져나가는 차가운 바늘의 감촉이 다시 한번 전신에 전기처럼 퍼졌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그 짜릿한 감각에 몸이 순간 경직됐다.

“이제 됐어요…”
딜런의 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손끝이 저려왔지만, 지체할 순 없었다. 주사기 안에선 옅은 하얀색의 액체가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비트라 용액이 담긴 금속병에 주사기 바늘을 꽂고 피스톤을 눌렀다. 차가운 새파란 액체가 하얀 척수액과 하나로 섞였다. 서로 다른 두 빛이 부딪히며 번져 들더니, 이내 실린더 안은 푸른색 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은 미묘하게 맥동하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호흡처럼 출렁였다.

나는 새 주사기를 꺼내 혼합된 비트라 용액을 옮겨 담았다. 그리고 그 커다란 주사기를 노라의 심장 위에 조용히 겨누었다.

“이제부터 제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신경 쓰지 말아요.”
목소리가 떨렸다.
“출혈이 멈추기 시작하면, 상처에서 나무 파편을 빼내주세요.”

딜런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명령하듯 속삭였다.
“시작합니다...”

주사바늘이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손끝으로 뜨거운 피가 전해졌고, 노라의 몸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 순간, 내 가슴속에서도 같은 열이 터져 올랐다. 두 개의 심장이 마치 하나가 된 듯, 같은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노라의 피부 아래에서 푸른빛이 실핏줄을 따라 흘러갔다. 빛은 어깨로, 팔로, 등으로 퍼져나가며
붉은 피를 밀어내고 상처의 가장자리를 서서히 감쌌다. 관통된 나무조각 주위에서는 전류가 맴도는 것 같은 푸른빛이 터졌고, 찢어진 근육이 스스로 수축하며 서로를 꿰매기 시작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던 상처가,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닫혀갔다.

나는 주사기를 놓지 않은 채, 이빨을 부딪히며 이를 악물었다. 몸속의 피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혈관이 텅 비어 가는 것처럼, 머릿속이 희미해졌다. 피부가 얼음처럼 식고, 손끝이 마비되었다. 복부 안쪽에서부터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마치 내 장기가 하나씩 뜯겨 나가는 듯했다.

“아으윽…!”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자, 딜런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칼리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쉰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괜찮아요! 노라를…! 노라의 상처에서 파편을 제거해요!”

딜런은 눈을 치켜뜨며 주저했다가, 곧 결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노라의 옆구리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나무조각에 닿자, 재생되는 노라의 살점이 그것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끈적한 소리가 섞이며 피와 빛이 뒤엉켰다.

“젠장…!”
딜런이 이를 악물고 조각을 강하게 당겼다. 나무가 천천히 빠져나오자마자, 노라의 살점 일부가 함께 뜯겨나갔다.
피가 튀었지만, 이내 멈추었다. 빛이 상처를 덮으며 출혈을 막았다.

동시에, 내 몸은 활처럼 휘어졌다.

“아아악!!”

간이 통째로 사라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신의 신경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눈물이 흘러내렸고,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그러나 나는 주사기의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끝까지.
그의 살아있음이 내 곁에 느껴질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주입이 끝났다.

나는 힘없이 숨을 내쉬며 주사기를 빼냈다. 노라의 흉부에서 터져 나온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바이탈이… 회복되고 있어요!”
소피의 목소리가 마치 꿈속에서 멀어지는 소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딜런의 외침이 들렸다.
“칼리뮤, 성공이에요!”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손에서 주사기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빛이 깜박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안도하듯 고개를 숙였다.
노라의 가슴 위에 이마를 기댄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내 시야는 빛으로 물들며 천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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