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하라. 네 행위의 결과가 미래의 인간 삶에 양립할 수 있도록 하라.”
한스 요나스, 《책임의 원칙》 (1979)
문명의 역사는 언제나 과학의 진화와 함께 걸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흐름의 전환점 위에 서 있다.
더 이상 과학이 인간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과학을 이끌어야 하는 시대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과학의 진화를 설계할 수 있는 자각이 필요하다. 기술의 윤리, 인공지능의 방향성, 생명 편집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단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곧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이자,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형상에 대한 결정이다.
과학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감정을 “윤리적 판단의 기반”이라 했다. 과학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움, 두려움, 책임감—이 감정들은 곧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이 된다. 그 거울 속에는 우리의 가능성과 미성숙함이 동시에 비친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지만,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이제, 과학의 다음 장은 바로 이 내면의 변화 위에 쓰여야 한다.
3장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은 또 다른 산업혁명보다 또 다른 인지혁명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인지혁명은 상상의 힘이었다.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허구를 만들어내며 대규모 협력과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두 번째 인지혁명은 과학혁명과 함께 찾아왔다. 우리는 논리와 이성, 실증의 힘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며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두 혁명은 모두 ‘능력’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기에, 때로 그 힘은 분열과 지배, 착취로도 향했다.
세 번째 인지혁명은 다르다. AI와 네트워크, 외부지능의 결합이 우리의 기억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시대, 그 변화의 중심에는 ‘본능의 재구성’이 놓여야 한다. 경쟁과 지배를 최우선으로 삼던 본능이, 조화와 공존을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AI는 단순히 더 빠르고 정확한 두뇌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이 거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3차 인지혁명은 ‘외부지능(AI·네트워크)과 인간 내면의 윤리·감정·가치 판단’이 상호증폭을 이루어, 조화와 공존을 기본 선택지로 만드는 학습 구조의 재편이다. 요점은 ‘더 많이 아는 능력’의 확장이 아니라, 무엇을 우선할지 스스로 선택하는 규범적 근육의 강화이며, 그 근육은 대중의 참여를 통해 집단적으로 학습·업데이트된다.
이러한 3차 인지혁명은 내가 제안한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위한 선언적 바램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대규모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이름이 '인지혁명'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의식의 전환이 인류의 미래를 더 밝은 곳으로 인도하기만 하면 된다.
유발 하라리가 제시한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을 논리와 이성, 검증과 증명으로 돌려놓은 2차 인지혁명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우린 분명히 알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망원경과 현미경과 같은 도구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직접 확인하게 해 주었고, 관찰과 실험을 통한 ‘경험적 증거’가 권위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인쇄술 혁명은 새로운 사상과 과학적 발견이 국경과 언어 장벽을 넘어 확산되며, 학자들 간의 ‘지식 네트워크’가 형성되게 만들었고, 수학과 자연철학의 결합과 함께 나타난 과학혁명은 자연을 신의 신비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풀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었다.
즉, 논리와 이성 중심의 사고 전환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여러 기술적 배경과 지적 흐름이 맞물리며 인간의 의식의 전환을 이끌어낸 것이다.
2차 인지혁명과 ‘참여’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과학혁명이 단지 몇 명의 천재 과학자가 세상을 바꾼 사건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 생산과 검증 과정을 지지하고 이를 후원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중세시대 이후, 상업과 항해, 식민지 확장으로 인해 새로운 지리, 생물, 자원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왔고, 국가와 왕실, 부유한 상인 계층은 이를 활용하기 위해 과학 연구를 적극 후원했다. 이를 통해 과학 아카데미와 학회가 조직적으로 지식을 축적·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갔다.
2차 인지혁명은 장치(망원경·현미경)·제도(학회·출판)·참여(후원·공론장)가 맞물리며 가능했다.
3차 인지혁명도 다르지 않다. 도구는 AI, 제도는 윤리·책임 거버넌스, 참여는 시민의 상시적 개입이다. 이 세 고리가 동시에 돌아갈 때만 ‘조화와 공존’이 본능처럼 학습된 집단 규범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3차 인지혁명을 위해선 대중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차 인지혁명이 소수의 지식을 공론장으로 끌어내고 ‘참여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 3차 인지혁명은 그 문을 통해 들어온 모든 사람이 방향을 함께 정하는 시대다. 우리의 목소리가 모여 인류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고, 과학의 속도를 넘어 그 목적과 가치를 설계하는 내면의 힘이 된다. 이 힘이 바로, 조화와 공존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3차 인지혁명의 심장이다.
오늘날의 과학기술 중심의 문명은 더 커다란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도약을 경이로움과 함께 두려움으로도 마주하게 된다.
세상 속의 모든 정보는 데이터가 되어 추출되고 분석된다. 인공지능과 각종 로봇은 우리를 대신해 이 수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며, 새로운 물질과 지식, 그리고 이론의 재해석을 수행하고 있다. 이전에 없던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은 지식 추출의 속도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전 시대의 인간이 자신의 한평생 동안 관찰하며 이론을 증명해 왔던 것에 비하면,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연구 안에 쓰인 데이터 속에는 우리의 개인정보 또한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AI를 활용한 자율 실험이, 의도치 않은 편향이나 설계되지 않은 반복 실험을 통해 특정 가치에 편향된 이론을 낳거나, 대응할 수 없는 위험 물질의 합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어떠한가?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인 수정은 새로운 전염병의 확산이나 생물학 무기, 또는 예기치 못한 생태계의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중국의 한 과학자가 쌍둥이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출생시킨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과학은 생명을 설계할 수 있지만, 생명의 의미까지 설계할 수는 없다.
또한 과학기술 간의 영역 침해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X의 스타링크 위성이 천문학 관측을 방해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간의 충돌은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며, 과학 내부의 조화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감시하고, 책임져야만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해, 우리가 만든 과학이 닿게 될 모든 미래 생명 앞에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 대규모 의식의 전환을 통한 윤리적 성찰이 담긴 관심과 참여가 우선되어야 한다.
‘참여’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직접 과학의 세계에 뛰어들거나, 과학자나 연구자들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을 주변에 해석하고 전달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시자가 될 수도 있다. 또는 과학의 산물인 기술과 각종 서비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윤리적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토론이나 모임에 참여하거나, 과학 정책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한 시민이 희귀 질환 연구에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를 기부했다. 그 자료는 몇 년 뒤, 병의 원인을 밝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당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학의 물결은 거대한 기관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순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당신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데이터의 기부자,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의 참여자, 과학 도서 토론회 등 — 그 어떤 모양이든, 과학의 물결 속에 당신의 ‘의지’가 담긴다면,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 된다. 당신의 선택은 단지 한 사람의 참여가 아니라, 과학의 방향을 조율하는 하나의 작은 나침반이다.
그저, 과학의 새로운 진화와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당신의 '목소리'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시민의 ‘과학적 문해력’과 ‘윤리적 감수성’은 과학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된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co-designer)로서 미래 과학을 함께 그려야 한다.
이제 진화는 유전자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다. 이제 진보는 속도와 효율이 아니라, 성찰과 조화의 이야기다.
과학은 인간을 뛰어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길이 되어야 한다. 기술은 감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더 섬세하게 이해하게 해주는 힘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학을 향해 질문해야 함을 알았다. 이제는 질문 위에 실천을 쌓을 때다. 나의 목소리가 과학에 담기고, 우리의 목소리가 또 다른 인지혁명 위에 문명을 세워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과학이 문명을 좌우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문명의 방향을 설정하는 주체가 된다.
이제 우리는 과학자들에게 맨해튼 프로젝트가 적힌 문건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
코스모스를 향한 우리의 의지,
질서와 조화, 번영과 회복이 담긴 쪽지를 건네줘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