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의 동물
푸른빛이 남아있는 새벽에 집 밖으로 나오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한번 보고
바쁘게 샤워한 뒤
조용하게 머리를 말리고
아무도 없는 길목을 걷던 출근길.
아침 6시쯤 나와야 했기 때문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늘은 아직 어두웠고 깜깜했다.
그렇게 몇 분 걷다 보면
흐릿하게나마 동틀 녘의 느낌이 나고,
하늘색에 검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검푸른색,
이슬에 젖은 풀냄새와 초여름의 습한 공기,
안쪽 불을 환하게 밝힌 채 지나가는 시내버스,
그 버스 안에서 앞만 보고 앉은 채 피곤을 머금은 사람들.
아이는 나 없는 하루 오늘도 무사히 잘 보낼까.
언제까지 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그 감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힘든 것이었다.
분명 행복, 성취, 자신감, 용기와는 거리가 먼 무엇이었다.
어둠을 뚫고 도착한 지하철역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틈으로
새어 나오는 형광등 불빛은
지나치게 밝은 흰색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엄마를 찾는 세 살배기 아들의 울음소리에
엄마 금~방 회사 다녀올 거야,
엄마 금~방오니까 이따가 만나,
아빠 손 잡고 한숨 더 자자 괜찮아!
그동안 고생했던 게 아까워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욕심과,
아이 곁에 머무는 엄마가 되어
울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충돌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노심초사했으며 늘 피곤했다.
그때부터 난 출근길이 아니어도
아침 6시의 하늘을 보게 되는 날엔
느닷없이 마음 한편이 저릿하곤 했다.
설레는 마음에 부풀어 캐리어 끌고
이른 새벽 공항으로 가는 여행길에서도,
추석 아침 차례를 준비하던 이른 아침에도,
주말 아침 눈떠진 새벽에도.
그러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시작된 백수생활.
(아마 내가 내 의지로 그만두지는 못했을 텐데)
그렇게 커리어가 중단되는 대신
아이와 함께할 수 있게 된 소중한 시간.
일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아이 곁에서 오롯이 엄마의 역할만 해보게 되었다.
사실은 힘든 날이 (더) 많다.
(일보다 육아가 훨씬 어렵다)
아이 간식을 싸서 보내고,
하원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솜씨는 없지만 저녁을 만들어 함께 먹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힘들어도 다음날이 되면 기분이 금세 말끔해졌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나섰던 새벽 산책길에서
아침 6시 검푸른 하늘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는데,
매번 내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그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새벽 공기가 상쾌해서 그냥 좋았다.
힘들었던 시간이 이젠 정말 지나간 거구나
내 마음에서 드디어 자리 뺏겼구나
내 마음 편안해진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던 시간과 기억이
살아가는 동안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프게 할 것 같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옅어지고,
또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잊어버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헷갈리기도 하고,
그렇게 모든 것은 잊힌다.
그러니 굳이
지나간 시간에 매몰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으로 소소하게 행복해하고
귀찮음 이겨내고 운동했다면 나 자신 칭찬해 주고
재밌는 책에 푹 빠져보고
아이의 수다에 귀 기울이고
마트 특가세일로 득템 했다면 즐거워하고
새로운 하루, 나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인간은
잊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다.
- 괴테, <파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