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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책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by 안개별


대학생이 되었다. 성인이 된 내가 참으로 좋았다. 독립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 기뻤고 처음 느껴보는 그 맛이 참으로 짜릿했다. 바라던 대로 삶을 그려갈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 노력하면 가질 수 있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맘껏 뛰어다녔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겼다. 더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소녀가 아니었다. 나를 옭아매던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었고 여지없이 만끽했다.


주어진 자유에는 책임도 따른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늦었다고 꾸지람을 할 사람도 없었기에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했다.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새롭게 인연을 맺은 학과 사람들, 동아리 사람들과 신나게 마시고 즐겼다. 선배들은 학교생활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나 같은 아이는 훗날 사회생활도 잘할 거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관계를 지속하는 제법 세련된 방법이라고 믿었다.



"대학 가면 살 빠져."

어른들은 대학생이 되면 숨만 쉬어도 살이 빠진다고 했다. 그 말이 거짓이었단 걸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열심히 공부하는 고딩들을 달래기 위한 배려였고 응원이었을 뿐이었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몸이 불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걸 분명 느끼고 있었다. 매일 수십 번은 들여다보던 전신 거울은 벽 쪽으로 돌아서 있었고, 네모 납작한 체중계는 옷장 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마주하기 싫었다. 직감이 현실이 될까 봐. 육중한 몸뚱이는 마치 짐짝과도 같았다. 내팽개칠 수는 없어 일단 지고는 가는데 부피도 크고 어지간히 무거워서 자꾸만 신경질이 났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 숨이 가빠 왔고 무릎과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유로움에 몸을 맡긴 지 겨우 한 달, 인생 최대 몸무게를 얻었다.



자격증을 따고자 공부하고 있었고 그날은 학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지만 앉을자리가 없었다. 몇 정거장만 지나면 되니까 잠시 서 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살이 찐 탓에 허리가 살짝 아파왔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한 손으론 버스 손잡이를, 또 다른 손은 허리에 얹어 놓고 있었다. 허리를 지탱하면 좀 낫겠지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던 학생 하나, 중학생쯤 되어 보였다. 내가 손을 움직이며 몸을 비틀자 부스럭대는 소리가 난 건지 학생은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어 나를 한 번 보고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앉으세요."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인 학생은 기어이 일어서서는 내 앞에 섰다. 정말 괜찮은데. 내가 몸이 불편해 보였나. 어렵사리 건넨 선의를 무시하는 것도, 모른 척 계속 서 있으며 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건넨 뒤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의자 위에 씌워져 있는 노란색 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노약자석. 노인, 장애인, 임산부, 어린이 등 신체적 약자를 위한 배려석이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난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스무 살의 청춘이었다. 그런 내가 임산부로 오해를 받고 자리까지 양보를 받은 것이었다. 불이라도 붙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고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애꿎은 배만 쓰담쓰담. 임산부도 아닌 나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지 못했다. 즐기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그 결과 엉망이 되어버린 나와 마주해야 했다. 스무 살, 한창 꽃다울 나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길 바랐지만 볼품없이 폭삭 시들어 버렸다. 거울 속 내가 나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부풀어 오른 너부데데한 얼굴은 두꺼비를 떠올리게 했고, 앞으로만 볼록 튀어나온 배는 올챙이를 연상시켰다. 임산부라고 착각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 남학생을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너무도 명백하게 나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


환골탈태의 일념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곰도 사람이 되려고 마늘만 먹었다는데. 사람인 내가 못할 것도 없었다. 나도 마늘만 먹었다. 동아리 모임에 가서도 그랬고, 친구들과의 친목 모임에 가서도 그랬다. 삼겹살 대신 기름에 푹 담가 잘 튀겨낸 마늘만 먹었다. 탑처럼 쌓여있는 상추들을 하나씩 집어 손바닥에 놓고 잘 익힌 마늘과 완두콩만 한 크기의 쌈장. 그 위에 고슬고슬 하얀 쌀밥을 올려 정성스럽게 쌈을 싸서 서너 번 먹는 걸로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혹여 취하기라도 하는 밤이면 곰이 아니라 호랑이처럼 무너져 버린 채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고야 말 테니까.

자글자글. 삼겹살이 고소함과 바삭함을 입는 그 절정의 순간들을 참고 견뎌냈다.


매일같이 먹고 마시며 나란히 체중을 불렸던 친구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다. 살도 함께 쪘으니 빼는 일도 함께 하는 게 맞았다. 학교가 끝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1시간 이상 동네를 활보했다. 우린 걷고 또 걸었다. 달음질이라도 하는 날이면 다음날 무릎에 무리가 따랐다. 체중을 고려하여 초반에는 걷기 운동만 했다. 40분 이상 걷고 있노라면 허벅지가 간질간질. 자꾸만 불편감을 호소해 왔다. 지방이 연소되며 만들어내는 감각이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들을 버티며 나아갔다.



끝끝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100일이 걸렸고 12kg을 뺐다.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에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직전년도 여름에 샀던 타이트한 핏감의 원피스들을 다시금 꺼내 입을 수 있었다. 원피스에 두 다리를 차례로 넣고 어깨까지 끌어올린 후 손을 뒤로하여 지퍼를 올렸다. 지이익. 멈추지 않고 달리던 지퍼가 목적지에 도달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눈물이 왈칵 차올랐던 그날의 그 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짜릿했던 감동과 감격의 순간을.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을 낳은 지금도 그때의 몸무게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게 된 건.


매일같이 술판을 벌이던 동아리 선배들이 그랬다. 참으로 지독하다고. 고기 대신 마늘만 먹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너는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결국 해내고야 마는 그런 아이라고. 그런 고집스러움을 평생 안고 줏대 있게 살아가라고. 그 말에 해맑게 방긋거렸다. 여린 풀잎처럼 마음이 피어올랐다. 스무 살의 난 그저 해쭉거리며 웃고야 만다.



이후로는 잊어버리지 않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주어진 것을 무작정 누리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선택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것을. 취하는 게 있으면 버리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런 이유로 크게 욕심내지 않고 살아왔다. 과욕은 일을 뒤틀기도 하고 누군가를 나락으로 보내기도 하기에.


자꾸만 커져가는 막중한 책임감에 거푸 어깨가 결리고 뒷목이 뻐근해져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오늘 내가 취할 수 있는 자유는 무엇이며 이것들이 어떠한 기쁨과 행복으로 다가올지를 상상해 보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면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 말고 일단 '(Go)' 하자. 부디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릿나릿 찬찬히. 자신만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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