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너답게, 그리 살아가면 어떠한가
"너무 착한 거, 사실 부담스러워.
너랑 있으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렇게 착하기만 하면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 힘들어. 착한 건 쓸데가 없다고."
단 한 번도 내가 착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착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이상한 소리를 듣고 싶지는 더더욱 않았다. 내 성격이 부담스럽다니. 어디에도 쓸데가 없다니. 살아온 지난날들을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십여 년의 긴 시간들에 담긴 의미 있는 기억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듯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꼭꼭 숨겨 두었다. 착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또다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이유에서 감정과 에너지 소모가 상당히도 컸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쳐 쓰러지곤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긴장해야 했고, 나를 숨겨야 했기에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외로워졌다. 어렸던 나도, 어른이 된 나도 여전히 혼자였다. 불편할 것도 어색할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아라 씨를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토록 착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가끔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가 싶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따뜻해져. 자기는 그런 사람이야. 그 예쁜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계속 써 내려가면 좋겠어. 진심이야."
회사 동료 언니의 고백에 마음 둘 곳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고, 타고난 성향을 숨기고자 노력했던 지난날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기억들은 번뜩이는 번개와도 같았고 우르르 쾅하고 치는 천둥과도 같았다. 덕분에 아득하고 희미하던 머릿속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해졌다. 부정당하던 과거의 시간들은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한 연습의 시간으로 치부되었다. 아무 효용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값진 영광의 과거가 되어주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줄 알았던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같은 사람인데. 참 이상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생각을 곱다고, 마음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하나둘 알게 되었다. 어디 요즘 세상에 주는 만큼 받을 수나 있는가. 금전적인 투자 역시 넣은 만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와중에 본전치기라니. 본전 그 이상이었다. 건넸던 양보다 더 커다란 마음을 돌려받고 있는 요즘이다. 주었던 건 깡그리 잊어버리고선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시멜로우처럼 말랑하고 솜사탕처럼 폭신하며 달달한 마음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나를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는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대체 어떤 생을 살아왔기에 이토록 뜨거운 마음을 어여쁜 언어로 내뱉을 수 있는 걸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깨달을 수 있었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대로 살아도 괜찮겠구나. 거짓 없이 진솔하게 나를 보이며 살아도 되는 거구나. 타인에 의해 재단되는 나 말고, 내가 주체가 되는 자주적인 그런 삶을 살아낼 용기가 생겼다. 그리 살아가야지. 더 많이 나를 내보이고 표현하며 살아가야지. 못했던 만큼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그런 삶을 살아내야지.
마음이 피었다.
햇살 쏟아지자 찬란하게 피어났다.
눈부시게, 코끝 시릴 만큼 난만하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