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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은혜

박하사탕 선생님

by 안개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도합 16년이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공부했던 기간이. 그중 고등학교 3년은 나에게는 그저 도려내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추억들이 가득 담긴 기간일 테지만 나에겐 그저 하릴없이 보내야 했던 끔찍한 삼 년이었다. 남들 하나쯤은 다 갖고 있다는 꿈조차 없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는 내내 아무런 목적 없이 책상과 한 몸이 되어야 했다. 온몸이 근질근질 좀이 쑤셔 왔다.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을 따라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굴러다니는 먼지 한 줌. 꿈을 꼭 가져야 한다면 난 그게 되고 싶었다. 먼지가 되어 바람 따라 둥둥, 창 밖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가능하면 가장 멀리, 학교로부터 제일 먼 곳으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시간들. 어찌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낼 수 있었을까. 이토록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평생 꺼내지 않고 살았다. 추억이랄 것도 없으니 괜찮았다. 굳이 없던 기억을 꺼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의 난 고향을 떠나 멀리 타지에서 살고 있기에 동창들을 마주할 일도 없었다. 가끔 그 시절의 힘들었던 감정들을 꺼내어 글을 쓰기도 했었지만 사람에 대한 명확한 기억은 끄집어내지 못했다. 그건 기억이 나지 않아서라고 속단했다. 내가 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때의 감정뿐. 어떻게 삼 년의 기억이 통으로 날아갈 수가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명쾌한 답은 내지 못했다. 그녀의 에세이를 읽기 전까지는.



어느덧 학교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저씨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우리 둘 사이로 맑은 바람이 지나갔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니까 힘내서 살아라."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앞으로도 불행은 다가올 테지만, 그래도 힘내서 살면 괜찮을 거라고. 목소리는 태연한 척 버티고 앉아 있는 나를 조용히 울렸다.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만니는 순간이 있다.

- 고수리 에세이
《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며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편견 없이 나를 대했던 한 사람을. 외롭지 말라고 친구처럼 자주 인사와 농담을 건넸고 어쭙잖은 충고나 조언보다는 기분을 묻고 내 이야기에 공감을 보탠 유일했던 사람. 내가 아는 가장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그날도 난 잔뜩 쭈그러져 있었다. 눈에 띄지 말라는 그 말에 마구 뭉쳐 놓은 종잇장 마냥 구겨지고 말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별안간 짜증이 올라왔다. 아무리 구기고 구겨도 작아지지 않아 보지 않을래도 보여지는 큰 키가 미친 듯 싫어졌다. 엄마와 아빠까지도 원망스러워졌다. 대체 왜 이렇게 날 큼지막하게도 낳았냐며 묻고 따지고만 싶었다. 내 몸뚱이는 어느 한 군데 제대로 쓰이는 곳이 없구나.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은 자꾸만 귓속을 파고 들어왔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연거푸 눈에 걸렸다. 이러고도 너희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아니, 나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들인가 싶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몸집을 키워갔다.


"무슨 일 있었구나."

주섬주섬.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앞에 들이밀었다. 투명한 봉지 안에 싸여 있는 박하사탕 하나가 유독 새하얗게 보였다.

"그거 매운 거 아니에요?"

"맵진 않은데 화한 느낌이 좀 있어. 매운 거 못 먹는다고 했지? 그러니까 먹어봐."

매운 걸 못 먹는다고 했는데 굳이 저걸 먹으라고 들이미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마음이 닫히면 입도 닫히곤 했기에 그런 날이면 질문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 되었다.

"일단 먹어보고 매우면 뱉어."

사탕을 건네는 선생님의 손이 무안스러울까 싶어 덥석 받고는 봉지를 까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혀 위에 올리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며 화한 기운이 입안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알싸하게 느껴지는 혀의 감촉이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지만 나름 견딜만했다.

"인생 맵다. 달콤할 때도 있지만 매울 때도 많아. 그때마다 지금 입속에 있는 박하사탕을 떠올려라. 결국 다 지나가거든. 매운 기운도 힘들었던 기억도."


다음 날, 필통 속으로 새 친구들이 이사를 왔다. 뽀얀 피부 위 줄무늬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박하사탕들이 어색한 듯 자리를 잡았다.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서너 개의 박하사탕은 나를 위한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누릴 수 있는 잠시의 도피처였고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어렸던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맵지 않게 알근히 느껴지는 기운들이 그날의 기분마저 바꿔놓는 것 같아서 자꾸만 손이 갔다. 그렇게 난 하루 세 번 박하사탕을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고등학교 삼 년을 남들처럼 무사히 마쳤다.



또다시 찾아온 스승의 날. 어김없이 아이들의 선생님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받는 마음에 부담이 얹어지지 않을 만큼, 그러나 감사한 마음은 한가득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선물을 준비했다. 그럼에도 나의 스승들은 이름조차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았다. 기억에서 지운 채 살아왔다. 받았던 그 마음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고마움은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놓고 정작 나는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만 앞서는 부모. 난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다.


보스락보스락. 부러 편의점을 가 사온 박하사탕은 여전히 투명한 봉지에 싸여 있었다. 한쪽 방향으로 잘 꼬인 봉지 끄트머리 양쪽을 반대로 돌려가며 포장지를 벗겨냈다. 그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는 박하사탕이 어쩐지 모르게 반가웠다. 잠시였지만 짧은 단발머리 시절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도독오도독. 박하사탕을 입에 넣고는 바삭 깨물어 먹었다. 달큰함과 맵싸함이 조화롭지 않게 어우러졌다. 그러나 딱히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앙상블이랄까. 이걸 매일같이 먹던 그때를 떠올리다 보니 혀에 감돌던 알싸함이 어느새 가셨다. 어쩐지 마음이 고요해졌다. 시끄럽던 머릿속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짊어지고 있던 묵직한 근심 걱정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그 시절 나에게 유일했던 어른, 박하사탕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이젠 누군가의 우주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조언처럼 결국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 다 지나간다는 그 말을 이제서야 십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 긴 세월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아 죄송하다고.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 덕분이었어요. 더는 옹송그리며 살지 않게 된 건. 잘못도 없이 주눅 드는 일도, 다른 이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일도 그만할 수 있었어요. 저는요. 이제 해득해득 세상 떠나가듯 웃고, 눈물 주르륵 쏟으며 신나게 울어 젖힐 줄도 알아요. 마침내 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소복이 쌓인 차디찬 눈 속에서 조심스레 저를 꺼내 놓으셨어요. 따끈한 한낮의 볕 받으며 눈부시게 피어나라고, 여느 누군가처럼 마음껏 꽃 피울 수 있도록 저를 살려내셨어요. 감사한 그 마음 더는 잊고 살지 않겠습니다. 그늘진 곳을 돌아보고 구석진 주변을 살피며 베풀겠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피워내는 삶을 살아갈게요. 진심을 다해 경애의 마음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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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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