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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휠체어와 함께 나란히 걷는 중입니다

by 안개별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지도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 길어야 세 달. 세 달이면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 달쯤 되었을 때 수술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차일피일 미루던 의사. 그 변명에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유명한 병원은 수술까지 5~6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적당히 믿을만한 곳으로 옮겨 3주 만에 재수술을 받았다. 나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사주에도 없던 주말부부 생활을 다섯 달째 하고 있는 셈이다. 남편이 필요한 것들을 카톡으로 보내오면 꼼꼼하게 챙겨서 병원으로 향한다.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기에 집에서 나서기 직전까지 묻는다. "여보, 또 필요한 거 없어?"


남편의 병원 생활은 제법 안정적이다. 정해진 시간마다 식사가 나오고 약속된 시간이 되면 물리치료와 침을 맞으러 간다. 일을 하는 동안은 잠도 충분히 자지 못했고 식사도 제때 챙기지 못해 항상 피로해 보였었는데, 지금은 얼굴에서 반질반질 윤이 난다. 5년은 더 어려 보인다. 청소 아주머니께서도 40대 초반인 남편을 30대 초반으로 봤단다.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 덕분일 터였다.


남편은 목발 사용을 하지 못한다. 손목이 약한 데다 몸은 거대해서 육중한 몸을 손 두 개가 지탱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고 그게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 처음엔 나도 남편도 휠체어가 처음이라 제대로 운전하지 못했다. 수술 부위뿐 아니라 이곳저곳 부딪히기만 했던 것 같다. 충격이 전해진 다리가 많이 아팠는지 남편은 몇 번이나 인상을 썼다.

그런 남편이 지금은 휠체어에 제법 익숙해졌다. 처음엔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요즘은 혼자서 병원 근처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혼자서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걱정 마, 혼자 다녀올 수 있어.”

호들갑을 떨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언제나 담담했다. 회사에 있던 난 어쩐지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며칠 전엔 미용실에 다녀온 남편이 이런 말을 꺼냈다.

“상가 입구에 경사로가 있긴 한데 생각보다 가파르더라. 지나다닐 땐 몰랐는데 휠체어에 타고나니 알겠더라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다시 돌아왔어. 주말에 자기 오면 가려고. 별것도 아닌데 좀 서럽더라."

피식 웃으며 얘기하는 남편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나랑 가면 되지. 애들 데리고 토요일 11시에 갈게. 예약해 둬."


주말 아침,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미용실로 향했다. 상가 건물 앞에서 입구로 들어서기 위해 휠체어를 밀었다. 어라, 쉽게 나아가질 않는다. 자꾸만 뒤로 미끄러졌다.

"여보, 나 힘이 없나 봐. 왜 자꾸 뒤로 밀리지. 경사가 심하지도 않은데."

"거봐, 나 혼자서는 안되더라니까."

하필 플랫 구두를 신고 가서 그런지 바닥이 더욱 미끄럽게만 느껴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거푸 맥없이 뒤로 밀렸다.


"도와드릴게요."

지나가던 행인 한 명, 2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내 옆으로 서며 따스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이좋게 휠체어 손잡이 하나씩을 잡고 경사로를 넘었다. 뒤로 밀리지 않게 한 쪽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코어의 힘을 이용해 온몸의 근육들을 깨워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머리카락을 자른 남편의 얼굴은 한결 깔끔해졌다. 이제야 좀 사람답게 보였다.



그날 이후, 거리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골목, 늘 다니던 매장, 카페, 약국. ‘여기 턱이 있었나?’, ‘저 경사로는 미끄럽진 않을까?’ 예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높낮이들이, 누군가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장애’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누군가 불법으로 주차를 하면 혀를 끌끌 찼지만 정작 휠체어가 올라설 수 없는 문턱에는 아무런 의문조차 가지질 않았다. 남편이 잠시동안 휠체어를 사용하며 처음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불편한 건 몸이 아니라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날부터 세상은 다른 색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걷던 공원길, 단골로 가던 작은 빵집의 문턱조차도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 톤 더 따뜻한 색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휠체어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있는지, 진입로는 너무 가파르지 않은지, 내 눈길은 이제 자연스레 그곳을 살피고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조금씩 깨달아가는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바꿔 나가는 것이리라. 어쩌면 남편이 휠체어를 타게 된 시간은 우리에게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값진 배움의 기간이 아니었을까.


우린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턱을 넘어갈 수 있게 손을 잡아줄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혼자서가 아닌, 함께 힘을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아갈 길이 멀고 때로는 지칠지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조금 더 단단한 사랑을 배우고 있었다.


남편은 곧 퇴원할 것이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예전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다시 두 발로 걷고, 언젠가는 이 날들을 농담처럼 얘기할 날이 오겠지. 나는 그날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한다. 작은 경사 앞에 앞에서 멈칫했던, 그러나 우연히 건네받았던 감사했던 그날의 마음을. 그리고 바란다. 조금은 낮아진 시선과 단단해진 마음이 누군가의 길이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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