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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엄마로서의 자리로

by 안개별


창밖은 어느새 어둑어둑,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서둘러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게만 보였다. 아, 오늘은 수요일이었지. 패밀리 데이라 일찍 퇴근해 집으로 향하는 길일 테지. 유리창 너머로 스쳐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날따라 더욱 부럽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보러 극장으로 가는 중일지도, 또 누군가는 날이 좋아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린이집에서 엄마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일 수도 있겠지.


몇 주 전, 부서 이동이 있었다. 예기치 않게 담당 브랜드가 바뀌었고, 기존에 없던 포지션이라 처음부터 새로 틀을 짜고 정리해 가야 했다. 업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매일같이 야근이 이어졌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러나 임원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시가 떨어지고 나면 2~3일 안에 기획안을 완성해 들고 들어가야 했다. 시장 조사부터 브랜드 전략 기획까지, 모든 과제가 단숨에 마무리되어야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압박 속에서 팀원들은 점점 지쳐만 갔다.

노트북을 펴고 마주 앉아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짜내 보았지만, 마음처럼 회의는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출근 후 벌써 열 시간을 훌쩍 넘기며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고, 다 태워버린 열정의 마지막 불씨조차 더는 피워낼 수 없었다.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고 에너지 드링크로 힘을 불어넣어 보지만 소용없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피로는 깊어져만 갔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어느덧 저녁 8시 30분. 이미 수십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더는 늦어질 수 없었다. 집에는 아이 둘과,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쳐 있을 친정 엄마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겼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고, 동료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료 정리에 몰두해 있었다. 더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애들 때문에 들어가 봐야지. 고생했어요."

마음이 무거웠다. 짊어지지 않아도 될 죄책감과 무력감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어나야 했다. 내 삶은 여기 회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다시 1층으로 올라오는 동안 여전히 회의실에 있을 팀장과 동료들을 떠올렸다. 여전히 머리를 맞대고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을 테지. 영혼까지 긁어모아 그들의 오늘을 갈아 넣고 있을 터였다.


집에는 엄마를 기다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두 명의 아이가 있었다. 친정 엄마는 빨래를 개다 소파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현관으로 뛰어나왔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안도했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이런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마치 매일 홀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양팔을 벌려 균형을 맞추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지만,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회사에서는 '책임감과 열정이 부족한 사람'일까 두렵고, 집에서는 '아이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는 엄마'일까 무섭다. 안타깝게도 그 어느 쪽도 부정할 수가 없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건, 내게는 여전히 꿈처럼 느껴진다.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결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워킹맘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정시에 퇴근한다는 건 여전히 요원한 과제이고, 쌓여 있는 연차마저 내 뜻대로 쓰지 못한다.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채 출근해야 했고, 생일날조차 함께 식사하지 못한 날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일하는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 병든 가족을 간병하는 자녀들, 학업과 일을 동시에 짊어진 청년들 또한 저마다 두 개의 삶을 살아내며 매일을 버텨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들의 고단함을 헤아리기보다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한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그저 100%가 아니라 150%, 200%의 결과를 내보이라며 다그친다. 성과를 더 내라면서, 그 과정에서 오는 고단함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현실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모든 곳에서 최선을 다해도, 남는 것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낙인뿐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이 모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완벽할 순 없다. 때로는 무력감에 휘청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신랄한 비판 앞에서 작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결과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본다. 왜 이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찌하여 늘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걸어야만 할까. 하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면, 흔들림이 꼭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중심을 잃고 떨어질까 두려워도 끝내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줄 위를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끝에는 해맑은 얼굴로 나를 맞아 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그러니 사회가 나를 조금은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할지라도,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삶을 끝내 지켜내겠다는 의지로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 확신이 나를 버티게 하고, 내일의 회사로, 내일의 집으로, 결국 엄마로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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