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가볍게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섬세한 사람인가 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한 감정의 촉수가 이따금 나를 지치게 만든다.
또다시 찾아왔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번아웃. 누군가 톡 건드린 듯, 바람 빠진 풍선마냥 가슴이 텅 비어버린다. 체력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부족한 탓일까. 지금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점점 더 큰 힘을 필요로 한다.
바쁜 하루의 틈새로 묵직한 우울이 스며든다. 잠시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와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간다. 잠깐의 정적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살랑이는 바람에도 가슴이 괜히 쿵쾅거린다. 무심히 듣던 노래 한 구절이 불현듯 마음을 건드린다.
그럴 때면 세상의 모든 슬픔이 나를 향해 밀려드는 것만 같다. 억지로 고개를 저어도 보고, 잠을 청해도 보지만 슬픔은 쉽게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자꾸만 어깨와 가슴 위에 달라붙어 그들이 가진 각자의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먼 미래에 지금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봐.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까 봐. 머릿속에 그려진 잿빛 미래가 결국은 내 눈앞에 놓여 있을까 봐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그 모자란 생각들이 나의 하루를 더욱 무겁게만 만들었을 터였다.
얼마 전부터 이유 없이 나에게 칭찬을 건네기 시작했다.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추어 자주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 하루를 별일 없이 보낼 수 있었음에,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았음에, 쓰는 일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음에 '오늘도 잘 살았어'라는 문장을 마음에 새겨 본다.
근거나 조건 없는 칭찬이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있어서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기 위해 인사처럼 건넨 말이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건, 어쩌면 내가 세운 기준이 너무 높아서일지도 모른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끝없이 완벽만을 좇다 보면 결국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럴 땐 아무 의욕도 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하루가 흘러가는 걸 바라볼 뿐이다.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작은 성취에도 만족해 보기로.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이유를 만들어 칭찬을 건네보기로. '너였기에 할 수 있었어', '그 정도면 충분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지금도 잘하고 있어'와 같은 달콤한 말들을 내 안의 나에게 속삭였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그건 나와의 대화였다. 그 대화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잘한다’,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내가 잘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유 없이 건넸던 칭찬이 근거를 찾아갔고, 그 근거가 다시 삶에 대한 만족으로 이어졌다. 결국 칭찬은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이자, 다시 살아갈 힘이었다.
인정받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누군가의 기대를 전부 채우지 않아도 내 하루는 여전히 충분히 빛난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유 없이 나에게 칭찬을 건넨다.
"오늘도 잘했어."
"충분히 괜찮았어."
"조금 부족해도, 그게 바로 너야."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말들. 그 말들이 내 안에서 번져 나를 따스히 감싸 안는다. 그 온기가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