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은 때론 인간미를 발휘한다.
강박에 묶여 있던 에너지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 안 하면 죽는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매일 같이 청소기를 돌렸고 걸레질을 했다. 힘든 줄도 몰랐다. 청소해서 힘든 게 아니라, 더러워진 집을 두고 봐야 하는 시간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했고, 늦게까지 외출을 했던 날이면 아이들을 재우고라도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정전기 청소포를 붙여 밀대로 온 집안을 샅샅이 밀고 다녔다. 하얗던 청소포가 거뭇한 먼지들을 붙이고 나서야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나의 결벽과 강박은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도 전해졌다. 장난감을 사주는 일이 드물었고, 크레파스나 사인펜을 아이들 손에 쥐어준 기억도 거의 없었다. 깨끗한 집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로 아이들의 손끝에서 자라날 상상력까지 막아버렸다.
예민한 감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올라왔다. 어질러진 거실을 보다 못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책이나 장난감들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으면 잔소리를 폭탄처럼 쏟아부었다.
그런 이유로 이따금씩 주객이 전도되기도 했다. 그저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는 옷일 뿐이었지만, 때 빼고 광내가며 아이들의 비싼 옷들을 극진하게도 모셨다. 아이들 옷에 묻은 작은 얼룩에도 어쩔 줄 몰라하며 매일같이 애벌빨래를 해야 했으며, 세탁기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은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양껏 뛰어놀지 못했다.
그저 내 욕심과 욕망만 채우려다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우지 못했다. 어렸던 아이들은 자기 몸 하나 돌보기도 버거웠을 터였다. 어쩌면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아이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변화가 필요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변해야 했다. 이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자 나를 위한 일이었다.
주 2회 '청소 없는 날'을 정했다. 평일의 한가운데인 수요일과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인 토요일로. 그날만큼은 어질러진 집안 곳곳을 그냥 두기로 했다. 눈 딱 감고, 이 악물고 견뎌보기로 했다.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몸이 들썩거렸다. 청소기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자리를 비우면 순식간에 물건을 제자리에 꽂아 넣곤 했다. 어질러진 거실이나 방이 눈에 밟혀 잔소리가 목까지 차오를 때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1부터 10까지 세었다. 숨을 고른 뒤 괜찮다며 스스로를 몇 번이고 다독였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오래 반복한 끝에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집에 대한 로망을 내려놓자 비로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블록을 쌓으며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먼저 보였고, 그들의 상상력에 아이디어를 보태 더 멋진 작품을 함께 만들어보기도 했다. 밖에서 놀다 옷이 다 더러워졌어도 괜찮다고, 빨면 된다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청소 없는 날은 나를 쉬게 했고, 아이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되는 집이 아니라, 마음 편히 쉬고 먹고 놀 수 있는 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즐기고, 함께 치우면 된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랬던 이유였을까. 뒷정리하는 시간마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 묻어있었다.
행복은 바이러스와도 같았다. 함께 있는 사람마저 행복에 전염되게 만들었으니까. 우린 그렇게 모든 순간 행복해했다. 우리의 사소한 하루가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 부족하면 어떠한가. 목표한 것만큼을 다 채우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이 있고 또 그다음 날이 있으니,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잠시 미루어 두어도 괜찮지 않은가.
스스로가 그리던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사람이 세상이 몇이나 있을까. 혹여 누군가 있다 해도 어쩌면 자신을 소진시키며 그 완벽함을 견디고 있을지도. 매 순간을 잔뜩 짊어지느라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지도.
오늘을 완벽하게 살아내기보단 과하지 않게,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조금 비워내고, 덜어내고, 오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당신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너무 애쓰지 말자. 당신의 오늘은 충분하다.